Breezy Point 사진산책
일요일엔 볕이 좋았다.
점심을 먹고 나니 아내가 추파를 던졌다.
"우리 동네 Board walk를 걸을까, 아니면 차를 타고 좀 멀리 가서 걸을까?"
나는 속셈학원을 다닌 적이 없지만
웬만한 아내의 속셈을 풀이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는 편이다.
늘 새로운 경험을 갈망하는 그분의 속셈은
좀 멀리 가서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경험을 하자는 거였다.
모험이라는 단어를 쓰긴 했지만
사실 어제 다녀온 곳은 아주 추운 날 한 번 다녀왔던 곳이라
낯이 익고 그저 평탄한 해변이라
난이도도 낮고 해서
좀 민망한 느낌이 들긴 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긴 섬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실제로 한쪽 끝은 JFK 공항 근처에서 육지와 연결되어 있어서
Rockaway Peminsula라고 불리니 섬 같으면서도
반도의 형체를 하고 있다.
공항 근처의 육지와 가까운 곳부터
섬을 옆으로 가로지르는 길이 Beach Street인데
Beach 1 스트릿부터 시작해서 204(정확하지 않다) 스트릿까지
Rockaway Peninsula가 길게 늘어져 있다.
숫자가 작은 쪽에서 많은 쪽을 보면
왼쪽은 대서양이고 오른쪽은 자메이카 베이인데
우리 집은 반도(섬)의 가운데쯤 해서 자리를 잡고 있다.
Beach 149 스트릿이 끝나는 곳부터 Riis State Park 가 이어지고,
그다음은 아주 오래전에
해안 포병이 있던 Fort Tilden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동네, 혹은 지역이
Breezy Point다.
한국말로 굳이 지명을 풀이하자면 '바람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마을로 통하는 큰길에는 검문소 같은 곳이 있지만
한 번도 검문을 당한 적은 없다.
마을은 큰길 양 쪽으로 나뉘어 형성되어 있는데
스트릿마다 외부 차량이 들어갈 수 없도록
Bar가 가로막고 있다.
듣자 하니 이곳은 해변도 사유지라고 해서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도록 경고문이 붙어 있다.
마을이 끝나는 곳에
차 열두어 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는데
낚시를 할 수 있는 허가증을 가진 차량만이
주차를 할 수 있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경고문이 붙어 있긴 하지만
우리는 이미 두 번이나 이곳에 왔었고
누가 신고를 하지 않는 한 주차 위반 딱지를 떼기에는
너무나 외진 곳이었다.
주차장과 잇닿아 있는 흙 길을 걸어 10 여분 가면 대서양에 이를 수가 있고
건너편으로 모래 언덕을 넘으면
물 건너편으로 코니 아일랜드와 또 그 너머 맨해튼이 보이는
자메이카 베이에 닿게 된다.
그 두 길을 한 번 씩 다녀왔다.
어제는 자메이카 베이 쪽으로 갔다가
천천히 걸어서 말 그대로 Breezy Point(크트 머리)를 돌아
대서양 해변을 걸어서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을 택했다.
해변에는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쓰레기를 줍는 자원 봉사자들도 만났다.
떼로 모여 휴식을 취하는 갈매기떼도,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위에 떼로 몰려 먹이를 사냥하는 갈매기도 보았다.
한 바퀴 돌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이 스물 남짓,
바다는 고요했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눈앞에 전개되기 시작했다.
아주 평화롭고 마음 따뜻해지는 여정을 마치고
대서양 쪽에서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을 따라 걷는데
심상치 않은 광경이 전개되는 것이 아닌가.
도로가 군데군데 물에 잠겨 있었다.
그래서 물이 잠기지 않은 도로의 옆 부분을 따라
처음 몇 군데의 장애물을 통과했는데
제법 큰 물 웅덩이가 시작되는 곳에 차 한 대가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두운 그림자가 마음속에 드리우기 시작했다.
-무사히 주차장까지 갈 수 있을까?-
아내는 용감무쌍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을 위한 길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결국 아내는 신을 벗어 든 채 바지를 걷어 올리고
물속을 걷기 시작했다.
나는 끝까지 물 가장자리를 걷다가
풀이 우거져 땅인 줄 알고 발을 디뎠는데
그만 무릎까지 웅덩이 속에 빠지고 말았다.
마지못해 운동화를 벗고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전진을 시작했으나
물은 점점 더 깊어지기만 했다.
결국 왔던 길을 돌아갈 수밖에 엎는 상황과 마주했다.
계속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던 중에
픽업트럭 한 대가 지나갔다.
낚시를 하러 4X4 픽업트럭을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주차장으로 돌아가던 사람들이었다.
차 뒤 짐칸에 탔던 사람이 앞에 더 김은 웅덩이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하며
우리 옆을 지나갔다.
그 뒤에 대고 아내가 구원 요청을 했다.
이럴 때 말을 꺼내지 않는 나와는 달리
아내는 용감하다.
"요청해서 안 되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왜 시도도 안 해?"
내 혼자였다면 나는 방향을 틀어
왔던 길을 돌아갔을 것이다.
앞으로 저만치 갔던 픽업트럭이
뒷걸음쳐 우리에게 왔다.
그런데 정말 물살을 가르며
조심스레 앞으로 전진하는 트럭 뒤에서 바라보며
마치 우리가 보트를 타고 있다는 착각을 했다.
물 웅덩이는 거의 주차장에 이를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정말 물의 깊이가 점점 깊어져서
픽업트럭의 그 큰 바퀴가 물에 잠길 지경이었다.
낚시꾼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구조되어(?)
가까스로 우리 차가 있는 주차장에 이를 수 있었다.
아내는 가방에서 10 달러 짜리 두 장을 꺼내어
그들에게 건네며 사례를 하려 했는데
차 주인인 덩치 큰 사람은 호쾌한 웃음으로 거절을 했다.
호의는 호의일 뿐, 순수한 마음을 오염시키지 말라는 태도였다.
결국 아내는 낯선 그 사내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허그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고,
그가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해피 엔딩으로 우리의 모험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아주 산뜻하고 단순하리라고 예상했던
우리의 일요일 오후 산책은
뜻밖의 상황을 맞으며 모험으로 바뀌었고
이웃의 도움으로 모험의 막을 내릴 수 있었다.
'Pay it Forward'라는 영화에서처럼
누군가에게 받은 도움을 도움을 준 사람에게 아니라
미지의 누군가에게 갚음으로 해서
겨자 같은 그 도움의 손길이 겨자 나무처럼
크게 번질 수 있다는 믿음을 나는 갖고 있다.
나의 은혜 갚음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까?
나는 그 사람들에게 빚을 졌다.
그 사람들이 우리가 건넨 돈을 받았다면
거래는 거기서 끝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사례를 받지 않음으로 해서
누구가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 때
나는 거절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는
빚을 간직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아내는 모험을 했던 하루가 너무 재미있었다고
오늘도 그 기억을 되뇌고 있을 것이다.
모래밭에 무병을 밝히듯 피어 잇는 노란 꽃
모래 언덕 위의 풀.
모래 위에서 잘 자란다.
중간 중간 모 래 위에 버섯도 있다.
자메이카 베이 건너가 코니 아일랜드
맨 오른 쪽 픽업트럭이 우리를 구조했다.
파도가 부서지는 곳에 갈매기들이 먹이를 찾아 모여 든다.
나이든 커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