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옛 추억의 그림자 셋

가을에 태어난 아이 2022. 10. 9. 19:16

 추억의 그림자 셋

나의 은퇴는 이 달 22 일로 예정되어 있다.

32 년 동안 내 일터가 되어 왔던 세탁소를 떠나

드디어 백수가 되는 것이다.

 

아직 어떤 느낌인지 잘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들이 어지러이 일어났다 스러지곤 한다.

큰 아들이 태어난 1990 년 8월 1 일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왔으니 만 32 년이 넘었다.

 

그래서 요즈음은 세탁소 안, 곳곳에 남아 있는

나의 흔적을 하나둘씩 지우고 있는 중이다.

어제는 세탁소 카운터 주변의 벽의 먼지를 털고

새로 페인트를 칠했다.

 

아주 오랜 시간 남아 있던 추억 세 개가

추억처럼, 상처처럼 남아 있었다.

 

 

그 하나, 십자가

 

세탁소를 열면서 나는 십자가를 

벽면 높은 곳에 달아 놓았다.

이 장소는 주님의 것이며 

나는 성실하게 그분의 뜻을 따라 일하는 종일뿐이라는 의미에서였다.

 

손님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 까닭인지

세탁소를 열고 몇 해 뒤에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바빠지기 시작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점심 식사를 제대로 하는 날이 거의 없을 지경이었다.

서서 밥을 먹었다.

밥 한 숟가락 먹고, 손님들을 맞느라

어떤 때는 한 시간 후에 두 번째 숟가락을 들 정도였다.

숟가락을 막 들 때 손님이 출현하면

짜증이 났고 그 손님은 이유도 모르는 채

미간 찌푸려진 내 얼굴을 마주해야 했다.

 

너무나 바빠서 짜증이 날 때면

나는 나는 벽 윗 쪽의 십자가를 올려다보며

그분에게 나의 짜증을 쏘아 올렸다.

 

"나랑 자리를 바꿉시다.

그냥 거기 그렇게 매달려 있지 말고

이리 내려와 여기 이 자리에서 내가 하는 일 한 번 해보시라니까요."

 

물론 그분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분을 이곳의 주인으로 모시기로 했지만

실상은 내 욕받이 그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닌 존재였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세탁소 문을 연 지 15년 정도 지나며

바쁨의 절정기는 하락세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 시간을 지내고

오늘에 이르렀다.

 

시간이 지나며

십자가를 올려다보는 일이 뜸해졌다.

아울러 십자가 위의 그분께

"이곳의 주인은 당신이십니다."라는 고백을 멈춘지도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시간이 흘렀다.

 

어제 페인트를 칠하기 위해

십자가를 내리고 보니 먼지만 쌓였을 뿐,

처음 모습 그대로였다.

 

처음 세탁소 문을 열고 들어오던 날,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탁소 문을 나서는 날,

30 년이 넘는 두 날 사이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십자가의 그분은 여전히 말이 없다.

 

 

그 둘, 스테이플러가 남긴 구멍

 

세탁소 문을 열고 몇 년 동안은

자신감으로 똘똘 무장되어 있었다.

 

그때 나는 젊었고 

뇌의 회로도 탄력이 있어서

손님들의 이름이며 주소까지 줄줄이 꿰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는 손님을 보고 옷을 찾아 놓고 기다리면

손님이 세탁소에 들어와 놀라기도 하고 

자기를 기억해준다는 사실에 감격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자신감이 문제였다.

나의 기억은 언제나 명확해야 했고

나는 그 사실의 신봉자였다.

 

어느 날 젊은 청년 하나가 세탁소에 찾아왔다.

 

자기 재킷 하나가 없는데

옷장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으니

분명 우리 세탁소에 있을 거라는 게 그 청년의 주장이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의 세탁소 티켓은

세 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손님 몫 하나,

그리고 세탁과 포이장 끝난 뒤

문패처럼 손님의 옷에 붙이는 것 하나,

그리고 손님들이 티켓을 잊거나 잃어버릴 때를 대비해

last name과 주소가 적힌 작은 명함 같은 같은 것 하나,

이렇게 셋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청년은 티켓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자기가 언제 문제의 재킷을 맡겼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이름을 찾기 위해 명함 같은 티켓을 뒤져보아도

전혀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결정적으로 그 청년이 뭔가 착각하고 있다고

단정을 짓고 말았다.

바빠 죽겠는데

이런 일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내 언성도 높아졌다.

내각 할 일을 다했으니

집에 가서 티켓이나 찾아보라고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아끼던 재킷을 찾을 수 없다는 희망이 사라진 터에

내가 화까지 내니

그 청년은 분을 삭이지 못했던 것 같다.

카운터에 있던 스테인리스 스테이플러를 들어

냅다 나를 향해 던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살의를 가지고 던진 그 스테이플러는

벽에 그 형체를 희미하게 남기고

구멍도 낸 채 바닥에 떨어졌다.

 

그 청년도 당황을 했던지 슬그머니

세탁소를 떠나갔다.

 

내 목숨을 걸고 내가 옳다는 걸 증명해 보이기 위해

무지한(?) 손님들과 무던히도 다투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한결 나긋해졌다.

내가 늘 옳지도 않고

내 기억력이라는 것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설치한 뒤에는 이런 문제로 손님들과 다툴 일은 거의 없어졌다.)

 

이젠 기력이 달려서인지

손님들과 문제가 생기면

설득을 하고 그래도 물꼬가 타이지 않으면

그냥 내가 판정패하는 것으로 매듭을 지어버린다.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지 말라'는 교훈이

스르르 어느덧 내 안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손님이 던진 스테이플 때문에

벽에 생긴 구멍도 희미한 옛 추억의 그림자 가 되고 말았다.

 

그 셋, 벽시계

 

페인트를 칠하기 위해 벽시계를 내려놓고

페인트를 다 칠할 때까지

정작 벽시계가 남긴 흔적은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다.

 

아마도 너무나 아내처럼, 가족처럼

늘 그 자리에 있어서 특별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그 벽시계는 세탁소를 처음 열 때

누군가가 선물을 한 것이었는데

32 년이 훌쩍 지난 오늘까지도 불평 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결같음이라는 말은 꼭 이 벽시계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일 년에 두 번 서머타임 시작과 해제되는 날,

시간을 바꿔주고 아주 가끔씩 배터리만 갈아주었을 뿐인데

그 긴 시간을 한 자리에 머물고 있던 던 존재가 바로 벽시계이다.

 

하루 종일 세탁소에서 일하면서

몇 차례씩 눈길을 주는 것도 이 벽시계이다.

밥때를 알기 위해서,

그리고 손님과 약속한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내 눈길을 주었던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 닫는 시간이 가까워질 때

내가 이벽 시계에 보내는 눈길은 얼마나 그윽하고

사랑으로 채워졌는지 모르겠다.

 

세탁소를 당장 때려치우고 싶을 정도로

절망하고 낙담했을 때가 어디 하우 이틀이었을까.

그래도 구원처럼 오후 7 시가 되면

벽시계는'오늘의 고통과 시름은 여기까지'라고 하며

길고 야윈 손가락으로 위로와 희망을 가리키곤 했다.

 

한결같음

 

내가 일을 마치고 세탁소를 떠나 있을 때에도

벽시계는 어둠 속에서 제 자리를 지켜며

32 년 세월을 버텨냈다.

 

벽시계의 얼굴도 많이 상했다.

부분 부분 녹도 슬고,

도금한 부분이 벗겨지기도 했다.

내 얼굴과 영혼의 모습을 저 벽시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내 속에서 변덕이 죽 끓듯이 끓었지만

그래도 한결같이 32 년을 세탁소에서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벽시계가

나와 동무해주어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