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버님의 구순을 축하드리며
지난 주일, 아침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마리아와 함께 동네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저는 언제나 어디서나 변함없이 달걀 프라이를 먹습니다.
다이너 같이 다양한 종류의 메뉴가 있는 곳에 가서도
제가 선택하는 아침 메뉴는 늘 'twe eggs over easy'입니다.
프라이한 달걀과 함께 나오는 토스트로
달걀을 터뜨려 노른자에 찍어먹을 때의 맛은
언제나 통쾌하다고 할 정도로 기가 막히거든요.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아침이나 브런치를 하러 가면
저는 어떤 고민도 하지 않고 늘 같은 메뉴를 선택합니다.
물론 메뉴판을 보지도 않습니다.
지난 일요일에도 저의 아침 메뉴는
다른 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마리아의 표현대로 메뉴판을 들여다보지 않고
식사를 고르는 참 '재미없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의 40년이 된
저 먼 기억 속에 있던 미국에서의
첫 아침식사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뉴욕의 JFK에 도착한 것이 3월 11일이었으니까
미국 땅에서 먹은 첫 아침식사는 3월 12일 아침이었을 겁니다.
아버님을 따라 브루클린 터미널 마켓(청과 도매상이 모여 있는 곳)에
견학을 갔는데 그곳 식당에서 저는
아버님께 달걀 프라이를 토스트에 찍어먹는 법을 배웠습니다.
Grits(제법 굵직하게 간 옥수수로 만든 죽)에 곁들여 먹은
그날 아침의 달걀 프라이 두 개가 '인생 아침'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는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하고 고생만 하다가
배의 오른쪽에 그물을 던지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은 제자들에게
숯불에 고기를 구워 놓고 아침을 대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밤새 힘들고 고된 일에 지쳐
허리는 아프고 허기졌을 제자들에게
그 말씀은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을 겁니다.
달걀 프라이 두 개와 토스트는
저에겐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준, 바로 그런 아침식사였습니다.
미국에서 아버님과의 첫 아침식사를 기억하는
내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며
마리아는 사진을 찍었습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실망하고 허기질 때 초대해주시고 손잡아주시는 분이 계셔서
40년이 다 되어가는 미국 생활을 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님과 함께
손 맞잡고 만드신 우산 속에서
저와 마리아, 형제들 모두, 그리고 자식들까지
더운 볕을 피하고, 비를 맞지 않으며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예로부터 부모 앞에서 자식이 자신을 가리킬 때
'불초(不肖)'라는 말을 썼습니다.
결코 부모님과 같거나 나을 수 없다는 겸양의 표현이지요.
정말 아버님 앞에선 '불초'라는 말 조차도
사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구순을 맞는 아버님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어머님과 손 맞잡고 살아오신
65년 세월에도 축복을 청해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이토록 건강하고 아름다운 부모님께서 우리 곁에 계시니
우리 자식들이 축하받을 일이기도 합니다.
아버님,
축하드리고 축복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