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 일기 - 조숙(早熟), 아니면 미숙(未熟)
독신 일기 - 조숙(早熟), 아니면 미숙(未熟)
아내가 출타 중이다.
어제 몬타나 주의 보즈맨이라는 곳으로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이다.
평소 의식주의 거의 대부분을 아내님에게
의존하고 있는 내게 그분의 부재는
삶의 일정 부분을 스트레스로 채워지게 한다..
내 혼자 먹고사는 일은
그럭저럭 해결할 수 있으나
아내의 새끼들, 즉 아내가 키우는
화초에게 잊지 말고 매일 물을 주라는 부탁(지시)은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
즐거운 일일 수도 있겠으나
내게는 아내님이 계시지 않는 동안의 자유로움을 구속하는
가장 크고 무거운 짐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화장실의 샤워기로 연결되는 수도관과 연결된
물 호스를 베란다로 끌어내는 일부터
레버를 움직여 물을 트는 일,
그리고 물의 강약이며, 많고 적음을 조절한다는 것은
이미 내 능력치의 한계를 벗어난 일이었다.
게다가 혹시 잘못하여 더운물을
아이들(?)에게 주었다가는 큰 일 난다는
경고까지 아내님은 남기고 떠나셨다.
어제 퇴근 후에는
시장기가 있었음에도
아내의 새끼들에게 바로 물을 주는 일부터 시작했다.
호스를 밖으로 끌어내는 일부터가
내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어서
(아내가 물을 틀기 전 후로 호스 안의 물이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을 했는데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플라스틱 용기와 물 뿌리개를 이용해서
베란다와 화장실을 열 번 정도 왕복을 하면서
마침내 임무를 완수했다.
나는 한 번에 두 가지 일 이상을 하면
뇌와 몸에 과부하가 걸리기에
일을 할 때는 힘이 들어도 단순화해서 한다.
아니면 정말 일을 하다가 일(?)을 내고야 만다.
특별히 수국에는 물을 많이 주라는 말씀도 기억해내고는
그대로 실천하였다.
내가 생각해도 참 기특했다.
물을 주다 보니 단풍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한 여름인데도
다들 푸른빛을 띠는 잎 중에서
이미 빨갛게 물이 들어가는 잎들도 꽤 있었다.
다른 잎들도 가을이 되면 앞 다투어
붉게 물들어 갈 것이지만,
그중에 몇은 늦가을까지
푸른빛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조숙과 미숙.
꽃나무에게 물을 주는 그 단순한 일조차
잘하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내 자신이 얼마나 삶을 살아가는 일에
미숙한가를 생각해 보았다.
오늘도 나는 나의 방식대로
꽃나무에 물을 줄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가을에 단풍나무가 물이 들 듯이
나의 삶도 익어가지 않을까?
그런데 고작 하루밖에 하지 않은 그 일에 꾀가 나서
비님 오시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내 마을이 들여다 보인다.
늦가을이 다 되어도 푸른빛을 띠고 있는 단풍잎처럼
나이가 더 들어도 미숙한 삶을 살 것 같은 부끄러움이
한여름 빨갛게 물든 조숙한 단풍잎처럼
내 얼굴을 붉어지게 하는
오늘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