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means not 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Love means not 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둘째가 요즘 너무 힘들어하고 있다.
함께 살던 반려견 Clementine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딸네 집을 찾아갔다.
내가 운동하는 사이
아내는 김밥을 쌀 재료 준비를 했다.
밥까지 해서
딸네 집에 가서
김밥을 싸서 아침 겸 점심을 먹을 예정이었다.
딸의 상황은 지난 주보다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았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일단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행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일부러 분위기를 밝게 끌어가려고 노력했다.
창 밖에는 살살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나는 딸아이와 허그를 하고
사위와도 허그를 잊지 않았다.
사위와의 사이는 지난주부터
악수에서 허그로 바뀌었다.
사위 Brian은 나와 허그를 하기 위해서는
허리를 반쯤 꺾어야 한다.
키가 2 미터 가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와의 허그를
이제는 조금씩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Clementine의 죽음으로 사위와 내가
심정적으로 더 가까워진 까닭이다.
Brian은 우리에게 커피를 타 주었다.
나에게는 아메리카노를 내려주었고
아내에게는 라테를 만들어 주었다.
내가 특별히 라테 위에 하트 무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Brian은 거절하지 않고 한 번 해 보겠다고 하며
정성과 마음을 라테 위에 얹었다.
내 눈에는 산뜻하게 잘 만든 것보다
더 예술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축구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바르셀로나 경기를 방영하는 tv를 틀어 주었다.
아파하는 딸을 위해
나와 아내는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딸이 우리에게 말했다.
"자꾸 시간을 뺐어서 미안해요."
나는 중학교 2 학년 때 읽었던
에릭 시걸의 ' Love Story'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해서
딸의 말에 답을 했다.
'Love means not 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사랑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 거라고.
대신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만 하는 거라고.
그리고 우리는 작별을 하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문 뒤에서 딸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올라갈까?
아내가 내게 동의를 구했다.
"아니."
우리가 딸아이의 아픔에 함께 할 수는 있어도
그 아픔을 제거해 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아픔을 털고 제대로 두 발로 서야 하는 것은
본인 뿐이기 때문이다.
둘째가 보스턴에 있는 대학에 갔을 때.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돌아올 때도
딸은 아마 저리 울었을 것이다.
결국 딸은 보스턴에서 4 년을 잘 지내고
지금까지 잘 걸어왔다.
그러니 앞으로도 아픔을 딛고 일어나
잘 살아갈 것을 나는 믿기 때문에
발길을 돌리지 않은 것이다.
-지영아, 아빠도 속으로 울었단다,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