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그녀는 예쁘다

가을에 태어난 아이 2022. 1. 30. 20:47

크리스 마스 때 찍은 가족 사진 맨 오른 쪽이 둘째

 

"My dissertation defense is tomorrow at 3:00 pm.

Hoping to be Dr. kim by 5pm tomorrow. Wish me luck!"

 

작년 12 월 2 일 우리 식구 페북에

둘째가 올린 글이다.

그날은 목요일이었다.

 

그러니까 다음날,

즉 금요일 오후 세 시에 박사학위 최종 심사가 있으니

온 식구가 집중해서 마음을 모아 기도해달라는 부탁이 그 내용이었던 것이다.

 

4 년이라는,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시간 동안

직장 생활하랴, 개인 상담하랴,

거기다 집안일까지 하면서 공을 들이 결과가

다음날 결정된다니

딸은 물론이거니와 유리 식구 모두에게

어찌 기쁜 소식이 아닐 수가 있을까?

 

물론 최종 심사 결과를 보아야 하겠지만

박사 학위를 받는 것에 대한

의심의 여지는 거의 없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미 통과 여부에 대한 결정은 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고

특별히 우리 딸을 믿기 때문에 걱정은 하지 않았다.

 

다만 축하해 줄 일만 남았다.

 

아내는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둘째에게 꽃을 선물하러 Jersey City에 있는

둘째네 집에 다녀오겠다는 뜻을 내게 전했다.

 

물론 나도 참 좋은 생각이라고는 했지만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그것은 금요일 오후에

뉴욕 시내와 Jersey City를 연결하는

Holland Tunnel을 지나가 본 사람이면

둘째네 집에 다녀오는 일이

얼마나 짜증 나고 맥이 풀리는 일인지를 당장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딸아이에게 꽃을 선물하는 일은

꽃배달 사이트를 찾아 들어가 화면만 터치하면

아주 간단하게 ' A Click Away'라는 광고 문구처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그 쉬운 방법을 마다하고

딸아이가 사는 동네의 꽃집을 찾아

꽃바구니를 주문해서

손수 딸네 아파트 입구에 단정히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섯 시쯤 논문 심사가 끝났을 때쯤,

딸아이에게 아내는 전화를 걸었다.

아파트 건물 입구에 나가 보라고.

 

박사 학위 통과의 소식과 함께

엄마가 놓아둔 꽃 바구니가 합세해서

딸아이가 기쁨의 환호를 지를 수 있도록,

말하자면 '깜짝 쇼'를 기획하고 실행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꽃 바구니가 사라진 것이다.

 

아냐는 딸아이가 느낄 기쁨의 크기만 상상했지

그 동네 이웃들의 정직함을 과대평가,

혹은 전혀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꽃값도 꽃값이지만

딸아이가 사는 동네까지

금요일 오후에 다녀오는 일은

어가 강을 거슬러 오르는 일처럼

힘들고 애가 닮는 일이었으니

아내와 딸 모두가 맥이 풀려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아내는 딸아이에게 기쁨을 주고 싶은 마음을

기할 수 없는 성정을 가진 사람이다.

 

인터넷 통해 그 동네 꽃집을 찾아 꽃배달을 부탁하는 전화를 했다.

 

마침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서

아내의 부탁을 거절하려던 꽃 가게 주인은

거의 읍소에 가까운 부탁을 하는

아내의 정성에 굴복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 딸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보낸 꽃을 받았다는----

 

아내는 꽃 바구니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맥이 풀렸을 법도 한데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결국 딸 에게 기쁨을 선사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일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이루고 마는 아내는,

자글자글 얼굴에 잔주름이 번지고 있지만

성형 수술 한 번 받지 않고,

보톡스 주사 한 번 맞지 않아도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내 눈에는 여전히

예. 쁘. 다.

 

 

                                    논문에 실린 감사의 인사.

                                   엄마 아빠 보다 먼저 자기 형제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것이 나를 기쁘게 했다.

                                   우리와 함께 살 날보다 형제들끼리 같이 할 시간이 훨씬 많기에

                                  엄마 아빠보다 형제들끼리 더 친하게 지내라고 난 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