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옛글을 찾다 - 함께 걷기

가을에 태어난 아이 2021. 1. 29. 23:26

제가 지난달에 한국에 다녀오면서 가장 값지고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나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아버지와 같이 병원에 다녀온 때였던 같습니다.

 

사실 저희 부부가 정말 오랜 만에 한국을 방문했던 것도
사실은 부모님을 찾아 뵙기 위해서였습니다.

자식들 셋이 다 미국에 살기에
부모님께서 이태 전까지만 해도
몇 년에 한 번씩 미국에 다니러 오시곤 했지만
올해 팔순이 되시는 아버지께서는
이제 비행기 타기가 힘에 부치시는 모양입니다.

 

이젠 명절 때마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외로움을 타신다는 말씀에
선뜻 용기를 내어서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한국 행을 결심했습니다.

도착한 다음 날 점심식사 후에 병원에 가신다는 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광주에서 버스를 타고 분당의 어느 전철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두 개 노선을 바꿔 탄 후에 도착한 서울의 보훈 병원.
그곳에서 진찰을 받으시고 처방 받은 약을 사서는
갔던 길을 되돌아왔습니다.

 

운전을 해서 다녀오시면 훨씬 쉬울 텐데,
가까운 곳은 운전을 해서 다니시지만
이젠 서울까지 운전하기가 두려우신 모양입니다.

다른 일들도 있었지만 다 미루거나 취소하고
단지 아버지 곁에서 오후의 다섯 시간을 보냈습니다.
5시간의 동행을 통해 아버지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뚜렷하게 기억이 나진 않아도
겨울 날씨에 비해 제법 포근했던 그날처럼 그렇게
마음이 따사로웠던 기억은 아직도 새롭습니다.

 

평소 자식들과 그다지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아버지께서
그날은 주로 말씀을 하시고 저는 듣기만 했습니다.
아버지와 그렇게 다섯 시간을 함께 했던 때가
우리 삶에서 그날 말고 또 있었던가 하고 생각해보니
별로 떠오르는 기억이 없습니다.

단지 아버지 가시는 길에 옆에 있었을 뿐인데도
아버지께서는 크게 흡족해 하시는 눈치였습니다.

 

누구에게 선물을 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쁜 선물을 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드리는 일인 것 같습니다.
함께 함으로써 행복한 추억을 함께 나누어 갖는 일이야말로
최고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것을 희생해서 다녀온 한국여행이었지만
제 삶에서 가장 잘 한 일인 것 같아 지금도
제 자신에 대해 흐뭇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누군가와 일부러
시간을 내서 함께 하는 일입니다.
그것도 그 사람의 걸음 속도에 내가 맞추며
천천히 함께 걷는 일입니다.

영어 단어 present'에는 '선물'이라는 뜻과 함께

'현재', '있음'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하는 선물은 

내가 그 사람과 지금 함께 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