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을 찾다 - 나와 뉴욕 가톨릭 방송
나와 뉴욕 가톨릭 방송 (2009)
내가 가톨릭방송과 인연을 맺은 것이 벌써 10여년이 되어가는 것 같다. 방송 경험이 전혀 없는 내가 어떻게 가톨릭 방송과 인연이 엮이게 되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니 꼬인 실타래처럼 그저 어릿어릿하기만 하다. 아마도 전에 다니던 성당에서 미사 해설을 했는데 목소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곤 해서 그게 인연이 되었는지, 아니면 라디오 방송에 글을 내 목소리로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이 일이 연유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 자신 스스로 목소리가 좋다고 생각해본 적은 결단코 없다. 마이크를 통해 듣는 사람들이 목소리가 좋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요즘도 그런 말을 들으면 귓전으로 흘리곤 한다. 만약에 듣는 사람이 좋다면 그건 주님께서 그렇게 해주시는 것이라 믿고 감사할 도리밖에 없는 것 같다. 처음에 우리가 방송을 시작한 곳이 브롱스 성당에 있는 주일학교 사무실이었다. 서너 평 될까한 좁은 곳에 지금 보면 원시적인 방송 기재를 놓고 그 원시적인 기재만큼이나 엉성하고 원시적인 사람이 방송과 인연을 맺게 될 줄 감히 상상이나 했을 법한 일인가. 방음장치는 기대도 할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성당 옆을 지나다니는 서브웨이 때문에 녹음하다 수시로 NG를 내곤 했었다. 일터에서 하루 종일 고된 일과를 마치고 집에서 휴식을 취해야 할 시간에 녹음을 하고 있으니 가뜩이나 목이 약한데 피로까지 겹쳐 녹음 중에 깜빡깜빡 졸거나 목소리가 나오질 않아 애를 먹은 것도 꽤 여러 번인 걸로 기억한다. 게다가 빨리 집에 가고 싶은데 가끔은 녹음 중이라는 표지판을 붙여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무실에 딸린 작은 방에 복사할 것이 있다고 문을 빼곡히 여는 분 때문에 다시 녹음을 새로 해야 할 때는 정말 까무라치고 싶을 만큼 괴로운 적도 있었다. 그래도 첫 방송을 라디오에서 내 목소리로 들었을 때는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마치 내가 유명한 연예인이라도 된 것 같았다. 비록 아무도 알아보진 않지만 모든 사람이 날 보는 것 같았다. 그럭저럭 몇 년을 일과 함께 방송까지 하다 보니 피로가 쌓이고 쌓인 모양이었다. 집에 가면서 졸음운전을 하다가 아찔한 일을 당할뻔 한 것도 여러 번 경험했다. 어느 날 피곤해서 거울을 보니 눈에 실핏줄이 터져 흰자위가 흉측하게도 아주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계속하면 안되겠다 싶어 방송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전에도 그만 두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번 표시했어도 모르쇠로 일관하시던 방송국 담당 신부님도 겁이 나셨는지 이번엔 승낙을 하셨다. 그렇게 한 2년 방송을 쉬었나 싶었는데 다시 방송을 해보지 않겠냐고 전화가 걸려왔다. 난 그때 한국에 다니러가는 분 땜빵으로 한 달만 하는 줄로 알고 봉사 차원에서 승낙을 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 달이 무려 3년이나 되었다. 지금도 내게 그렇게 전화한 사람이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인지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평소에는 활발하게 말을 잘하는 사람이 그 일에 관해서는 일체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불행인지 다행인지 방송 시간이 늘었다. 주일 오후에 30분이 늘어난 것이다. 처음엔 오전 방송을 재방송하다가 나보러 원고 쓰고 진행을 하면 어떻겠냐고 PD가 운을 떼었다. 내 대답은 물론 아니 NO 였다. 내 비지니스 하나만으로도 힘에 겨운 데다가 교회의 다른 봉사까지 시간을 써야 하는 내가 시간을 더 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게다가 미국에 와서 글이라곤 거의 써본 적이 없는 데다가 글 솜씨에는 늘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단호하게 NO!라고 통첩을 하고는 그런 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3년 전 부활 주일을 앞둔 어느 날 부활 주일 오후 첫 방송 원고를 써오라고 녹음 당일 PD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날따라 PD의 말이 이상하게도 짜증스럽지 않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걸로 들렸다. 부활을 앞두고 한층 바쁠 때라 일하랴 원고 쓰랴 참 바쁜 하루를 보냈다. 다행히도 내 어릴 적 부활절에 관한 기억을 흰 목련꽃과 예수 그리스도의 내어주는 사랑에 연관 지어서 마무리 지을 수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어떻게 내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지 그것도 미스터리라면 미스터리다. 그리고 지금까지 3년 가까이 넘게 주일 오후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힘이 부치고 능력도 떨어지지만 그 부족한 만큼을 주님께서 채워주셨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내 힘과 능력만으로는 될 수 없는 것을 방송국 동료들을 통해서 때론 직접 그분께서 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 가톨릭이라는 말이 보편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남녀노소, 그리고 종교나 종파에 관계없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방송을 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그건 내 능력 저 멀리 있는 일이다. 혹시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들어주시면 그런 분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멋모르고 시작한 방송이 점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요즈음 받는다. 경지가 깊어진다는 뜻은 전혀 아니고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 있는지 점점 더 헤매고 있다는 뜻이다. 어쨌든 힘이 들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지만 그에 따르는 은혜도 돌이켜보니 참 많이 받았다. 늘 목에 신경을 쓰니 피로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조금만 목에 무리가 생길 양이면 조심에 조심을 하니 몇 년을 큰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보낸 것 같다. 게다가 원고를 쓰기 위해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도 더 많이 더 오래 해야 하니 영적으로도 참 건강해짐을 느낀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십자가만을 주신다는 말이 꼭 맞다는 생각을 해본다. 매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3년이가는 세월 동안 방송을 할 수 있었음은 오로지 십자가를 내게 지워주신 바로 그분의 은총임을 겸손 되게 고백한다. 그리고 방송을 들으시는 분 중에서 이 부족한 사람의 모자람을 기도로 채워주고 계시는 여러분들의 사랑에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있음 또한 고백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