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큰 딸의 생일, 엄마의 생일, 대통령의 생일

가을에 태어난 아이 2021. 1. 21. 19:57

큰 딸의 생일, 엄마의 생일, 대통령의 생일

 

 

어제는 큰 딸 소영이의 생일이었다.

 

소양이의 생일은 1 월 20 일인데

내가 미국에 이민한 해에 태어났다.

JFK에 도착한 것이 1984 년 3 월 11 일이었으니

큰 딸이 이 세상에 나와

첫 대면을 할 때까지 두어 달 가까이 걸린 셈이다.

 

아내가 한 해 먼저 이민을 왔고

나는 아내의 초청을 받고, 한 해 뒤에 합류를 한 것인데

초청을 위해 한국에 왔을 때 아이가 생겼다.

 

아내는 남편도 없이 

출산과 육아를 해야 했는데

그것이 참으로 마음도 아프고

보이지 않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사는 것 같은

민망한 느낌을 가지고 살아야 했다고 한다.

 

축복이면서도 조금의 슬픔 같은 것을 안고 태어난

큰 딸은 어릴 적부터 남 달랐다.

오죽하면 세 살이가 되었을 때

얼마나 똑 부러지고 야무졌는지

아내는 학교에 보내자고 나를 얼마나 닦달을 했는지 모른다.

 

모든 재주를 다 가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얼마나 예쁜지 지나친 사람들이

얼굴을 돌려 다시 딸을 쳐다보기 일쑤였다.

 

농담 넷 진담 여섯으로 미국에서 첫 번 째 대통령이 나온다면

그 사람이 바로 우리 큰 딸이라고

의심도 하지 않고 큰 소리를 쳤다.

 

그런데 그 큰 딸은 대통령은커녕

아주 평범한 여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남편과 아이 셋과 함께

교사로서 열심히 그리고 아주 바쁘게 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큰 딸이 결혼해서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이

큰 딸로 해서 손주 셋을 얻은 것이다.

내 삶을 둘로 나눈다면

할아버지가 되기 전과 후라고 할 수 있다.

손주들로 해서 내 살에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사랑이라는 걸 조금은 이해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손주들을 통해서였다.

우리 아이 다섯 키울 땐 몰랐는데

손주들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내 심장이라도 떼어 줄 수 있을 정도이다.

 

기도 할 때 보통 하느님 아버지로 시작하는데

그보다는 하느님 할아버지로 시작하는 것이

더 맞갖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도 내가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이다.

 

큰 딸이 대통령이 된 것보다

엄마가 된 것이 얼마나 다행(?)하고

축복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그런 딸의 올해 생일이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과 같은 날이었는데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아내는 딸도 없는 우리 둘만의 저녁 식탁에

미역국을 끓여 올렸다.

아마도 딸아이를 낳고 먹었던

미역국을 기억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힘들지만 행복했던 기억의 재현!

 

어제저녁의 미역국은 삶의 거룩한 예식이었다.

큰 딸의 탄생은

또 한 편 아내가 엄마로서 탄생한 날이기도 하다.

 

엄마와 딸과 손주들,

그 생명의 연속성을 시작하게 된 날이 아닌가.

 

나는 딸의 생일이며,

딸의 엄마 생일,

그리고 대통령으로서의 생일을 동시에 축하하며

정말 맛난 미역국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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