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시간 속에
고향은 시간 속에
나는 잠들 수 없었습니다.
머리가 커서 찾은 고향에서의 밤.
문 창호지에 강물 소리가 흘렀고
그리고 달빛이 강 물에 젖어
창호지에 번졌습니다.
유년의 기억이 전혀 없는
고향을 찾았던 밤의 기억은
고향 생각을 할 때마다
나를 잠재적 불면증 환자를 만들었습니다.
나는 늘 강을 그리워하며 살도록 운명 지워진 것 같습니다.
뉴저지로 이사한 후
나는 Piermont를 내 이방의 고향으로 삼았습니다.
강물이 내 유아기의 고향처럼 흐르기 때문이었지요.
비를 맞으며 강 가를 배회한 적도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비를 맞으며 썼던 글입니다.
비의 나그네. 2012.
---- 비 오는 날엔, 사랑하는 사람들은 더욱더 사랑을 하게 되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도 사랑을 하게 된다-----
1
고등학교 삼 학년 때 읽었던 고은 시인의 글이 나를 빗속으로 내 몰았습니다.
비가 오면 비의 나그네가 되었습니다.
사랑하고 싶었고 또 그만큼 사랑받고싶었던 젊음이
빗속을 떠 돌았습니다.
비를 맞으며 사랑에 흠씬 젖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빗속에서 깨우침을 얻게 되었습니다.
비 오는 날 왜 사랑하게 되는 지를------
깨달음을 얻은 스님이 게송을 짓듯이,
고은 시인이 던진 그 화두에 답하는 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삼십여 년------
기억 속에 묻혀 있던 그 화두를 꺼내 시를 쓰려해 보았지만,
시는 되지 않고,
시작 노트의 언저리에서만 맴도는 잡문 밖엔 남은 것이 없네요.
그렇지만 사랑은 구도의 길 같은 것,
사랑이란 화두를 껴 앉고 평생 풀고
또 이루어 가야겠지요.
2
젊은 시절, 비가 내리면, 비를 맞으며 무작정 걷곤 했습니다.
교외선을 타거나 경춘선에 몸을 싣기도 했지요.
아무 역이나 물이 흐르는 곳에서 내렸습니다.
‘일영’, ‘송추’, ‘장호원’ 같은 역 이름이 떠 오르고,
‘강촌’ 같은 곳에서 비를 맞은 적도 있었습니다.
강물 옆에서 하염없이 비를 맞으며,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습니다.
갈대숲이라도 있는 곳이면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습니다.
빗속에서 “사랑한다’, ‘사랑한다’ 속삭이기도 하고,
세차게 비바람이 휘 몰아 칠 때면,
득음을 하기 위해 폭포 옆에서 소리 연습을 하는 소리꾼처럼
목청에 피가 맺히도록 ‘사랑한다’고 외쳐대기도 했습니다.
사랑의 대상은 ‘어떤 누구’ 였어도 좋았고, ‘
아무 누구’ 여도 상관없었습니다.
그저 사랑하고 싶었고,
또 그만큼 외로웠으니까요
내 사랑의 언어는 비에 녹아서 냇물로 흐르고,
또 강물이 되어 흐르다가 바다에 이르겠지요.
그리고 하늘에 올라 구름이 되었다가,
오늘처럼 다시 비가 되어 내리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먼 옛날, 어느 누군가가 나처럼,
비가 내리면,
빗속에서 그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외쳤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의 비를 맞고 자란 나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어도,
저절로 사랑하게 되었으니까요.
먼 훗날, 그 누군가도 비를 맞으면,
내가 그랬듯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절로 사랑을 하게 되겠지요.
3
오늘 오후엔 Hudson 강가,
Piermont의 갈대숲에 나가보렵니다.
강 쪽을 향해 그리움만큼 의 목을 빼어든 갈대들은
어느새 내 키의 두세 배는 자라있겠지요.
그 갈 숲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갈대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에서
내 젊은 날의 사랑의 언어들과 만날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빗방울에 서걱대는 갈대들이 들려주는 그 숱한 사랑의 언어들을-------
비에 젖어서,
그래서 다시 온몸과 영혼까지 푹 젖는 그런 사랑을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이제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합니다.
내 마음의 고향에서 참으로 먼 곳입니다.
다리를 몇 개 건너야 Piermont에 갈 수 있습니다.
헷세의 싣달타처럼
강물 소리를 들으려 했던 날,
그러면 침묵으로 대답하던 깊은 강물.
이젠 공간적으로 이별입니다.
창호지에 흐르던 내 고향의 강물 소리,
달빛이
그대로 내 안에 있는 것처럼
Piermont의 깊은 강물 소리도
내 마음의 창호지에 여전히 흐를 것입니다.
고향은 아무래도 공간이 아닌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밤, 강물 소리 때문에
뒤척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