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sgivingday(추수감사절) 아침에
Thanksgivingday(추수감사절) 아침에
새벽 네 시 반,
희미한 빗소리에 눈이 떠졌다.
아직 꿈나라에 있는 아내를 깨우지 않으려 발소리를 죽이며
침실 밖으로 나왔다.
커튼을 젖히고 밖을 보니 흐린 눈에도
물이 고인 길 위에 빗방울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빗방울이 만드는 파문은 희미하게 보여도
그럴 리가 없음에도
그 소리가 내 가슴에도 울리는 것 같다.
미국에 온 지 거의 40 년이 되었다.
그러니 이젠 한국의 명절보다는 미국의 명절이 더 친숙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가족들이 모두 모일 수 있는 미국의 명절 중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가 가장 큰데
올해는 가족들이 모두 모일 수가 없게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가장 소중한 가족들과의
저녁 한 끼마저 못하게 보이지 않는 금줄을 그어놓았다.
나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칠면조 고기를 먹어야 하는 고역을 기쁘게 감당하면서도
추수감사절은 손꼽아 기다리는 명절이었다.
뉴저지 집에 살 때는 날이 어두워지면
많은 집에는 일 년 중 거의 쓰지 않는
다이닝 룸에도 불이 켜진다.
집 밖에는 손님으로 온 사람들의 차들로
평소에는 거의 보이지 않던 차도가 메꿔진다.
어떤 집은 다른 곳으로
명절을 쇠러 갔는지 불이 꺼져있는 곳도 제법 많이 보였다.
집 안의 불이란 불은 모두 켜고
한 해 중 가장 집 안이 밝았고
그리고 가장 요란해야 할 오늘 저녁을
우리 부부 둘이서 보내야 한다는 사실은
추수감사절 새벽에 내리는 비처럼 어둡고 처량한 느낌이 들게 한다.
날이 밝으면 아내가 미리 주문해 놓은
펌킨 파이를 들고 우리 아이들이 살고 있는
집과 아파트를 순회하며 나눠주고 올 예정이다.
그렇게라도 아이들과 손주들 얼굴이라도 보기 위함이다.
비록 집 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서 잠깐 얼굴만 보는 만남이어도
막내아들 빼고는 아이들 하나하나 다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
아내에겐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날이 밝으면 비를 뚫고
아이들을 만나러 떠날 것이다.
아직까지는 건강하게 살아 있음을 감사하며
엄마와 아빠의 건강한 미소를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펌킨 파이 위에 살짝 얹어놓고 돌아올 것이다.
비가 와도,
그리고 모두가 함께 할 수는 없어도
오늘은
감사하는 마음을 주고 받아야 하는
Thanksgiving Day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