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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꽁치 조림을---

가을에 태어난 아이 2019. 10. 5. 07:27

금요일엔 꽁치 조림을





독신 5일 째다.


아내가 지난 주 일요일에 한국에 다니러 갔다.

처음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내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풍성해서 

그걸 주체 할 수 없었다.


5일 쯤 되니 

이젠 혼자 지내는 시간이 얼마나 윤택하고 자유로운지 모르겠다.


다만 끼니 걱정만이 내 앞에 놓여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메뉴를 선택하는 것도

내 자유 의지를 활용해야 하니 

이젠 내가 제법 독립적인 인간으로 우뚝 선 것 같은 자부심까지도 느껴진다.


오늘 저녁은 금요일이니 생선을 먹기로 했다.

생선이라고 해서 정말 생선 요리를 하는 게 아니라

꽁치 통조림을 사용해서 약간의 손맛을 꽁치에 배게 하는 것이 전부다.


작은 남비에 양파를 잘라서 바닥에 깔았다.

그리고 고추 한 개와 마늘 두 쪽을 잘게 잘라서 그 위에 얹었다.

깡통을 뜯고 물을 따라낸 뒤,

꽁치를 그 위에 투하했다.


마침 냉장고 안에 양념 간장에 절인 깻잎 생각이 나서

그 양념 간장을 꽁치 위에 부었다.

깻잎 한 장을 그 위에 덮고

고춧가루 한 술을 첨가하니 준비 끝!


남비 안의 내용물이 끓는 기색이 나기 시작할 때

숟가락으로 아래 쪽에 몰린 국물을 떠서

꽁치 위에 뿌려 주었다.

20 분 정도 끓이고 맛을 보았다.


그것은 지상의 맛이 아니었다.

깻잎 향까지 가세한 꽁치조림의 맛은

내 이성을 앗아갈 정도였다.


오늘 저녁과 내일 점심 도시락을 싸갈 수 있도록

2 인 분 밥을 했는데

정신 없이 먹다 보니

도시락을 싸 갈 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내가 만든 꽁치 조림은 그야말로 밥도둑이었다.


금요일에 생선을 먹는 전통은

아마도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 같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사망한 것이 금요일이니

피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또 맛도 좋은 고기를 먹지 않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과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서 

그런 전통이 이어져 내려 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런데 고기보다 맛난 꽁치 조림을 먹고 나니,

다음 주 금요일에 또 꽁치 조림을 

먹어야 겠다는 욕망이 슬슬 똬리를 틀기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음을 묵상하기 보다는

오직 마약 같은 꽁치 조리의 맛 때문에

금요일을 기다리는 나는

언제나 인간적으로, 신앙적으로 철이 들까?


흐뭇하게 저녁을 먹고 나니

슬슬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꽁치 조림 덕에

혼자 맞는 밤도 다정스레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