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엔 꽁치 조림을---
금요일엔 꽁치 조림을
독신 5일 째다.
아내가 지난 주 일요일에 한국에 다니러 갔다.
처음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내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풍성해서
그걸 주체 할 수 없었다.
5일 쯤 되니
이젠 혼자 지내는 시간이 얼마나 윤택하고 자유로운지 모르겠다.
다만 끼니 걱정만이 내 앞에 놓여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메뉴를 선택하는 것도
내 자유 의지를 활용해야 하니
이젠 내가 제법 독립적인 인간으로 우뚝 선 것 같은 자부심까지도 느껴진다.
오늘 저녁은 금요일이니 생선을 먹기로 했다.
생선이라고 해서 정말 생선 요리를 하는 게 아니라
꽁치 통조림을 사용해서 약간의 손맛을 꽁치에 배게 하는 것이 전부다.
작은 남비에 양파를 잘라서 바닥에 깔았다.
그리고 고추 한 개와 마늘 두 쪽을 잘게 잘라서 그 위에 얹었다.
깡통을 뜯고 물을 따라낸 뒤,
꽁치를 그 위에 투하했다.
마침 냉장고 안에 양념 간장에 절인 깻잎 생각이 나서
그 양념 간장을 꽁치 위에 부었다.
깻잎 한 장을 그 위에 덮고
고춧가루 한 술을 첨가하니 준비 끝!
남비 안의 내용물이 끓는 기색이 나기 시작할 때
숟가락으로 아래 쪽에 몰린 국물을 떠서
꽁치 위에 뿌려 주었다.
20 분 정도 끓이고 맛을 보았다.
그것은 지상의 맛이 아니었다.
깻잎 향까지 가세한 꽁치조림의 맛은
내 이성을 앗아갈 정도였다.
오늘 저녁과 내일 점심 도시락을 싸갈 수 있도록
2 인 분 밥을 했는데
정신 없이 먹다 보니
도시락을 싸 갈 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내가 만든 꽁치 조림은 그야말로 밥도둑이었다.
금요일에 생선을 먹는 전통은
아마도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 같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사망한 것이 금요일이니
피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또 맛도 좋은 고기를 먹지 않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과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서
그런 전통이 이어져 내려 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런데 고기보다 맛난 꽁치 조림을 먹고 나니,
다음 주 금요일에 또 꽁치 조림을
먹어야 겠다는 욕망이 슬슬 똬리를 틀기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음을 묵상하기 보다는
오직 마약 같은 꽁치 조리의 맛 때문에
금요일을 기다리는 나는
언제나 인간적으로, 신앙적으로 철이 들까?
흐뭇하게 저녁을 먹고 나니
슬슬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꽁치 조림 덕에
혼자 맞는 밤도 다정스레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