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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owe me one!

가을에 태어난 아이 2017. 7. 23. 10:31



화씨 90도를 넘는 날씨 때문에

흐느적거리는 몸과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지낸 것이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토요일인 오늘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침부터 습하고 더운 열기는

몸 따로 정신 따로 놀기에 충분하고 남을 지경이었다.


내 머릿속은 

오늘 일을 줄일 수 있는 만큼 줄여서

일찍 일을 마치고 세탁소를 떠날 생각만으로 꽉 채워졌다.


이런 나의 게획은 척척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적어도 12 시가 막 넘어

얼굴에 솜털이 아직 가시지 않은 

앳된 그녀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 처음 계획대로라면

오후 두 시 쯤이면 오늘 일을 마치고

보일러를 끌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보일러만이라도 끄고 나면

아무리 세탁소 안이라지만

더위를 견디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러니 오늘 일을 줄이려고

내가 그리도 간절한 마음으로 

몽롱한 전신줄이나마 놓지 않고 아침부터 발버둥을 친 것이었다.


그녀는  흰 가운을 카운터에 올려놓으며

오늘 오후까지 세탁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부탁은 그렇지 않아도 풀기 빠진 내 정신에 

강한 펀치까지 한 대 얹어서 

물에 젖은 화장지처럼 스르르 풀어지게 만들었다.


그녀의 부탁을 들어준다면

나의 계획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흰 가운에 "NYU TP'라는 엠블럼이 붙어 있는 걸로 보아

그녀는 뉴욕대 병원에서

 물리 치료 일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었다.


"정신 바짝 차리자!"


만약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게 되면 

남은 일 마무리 짓고

또 한 로드 빨래를 해야 하니 

적어도 한 시간은 더 보일러를 틀어 놓아야 한다.


한 시간을 더 찜통 더위를 견뎌야 한다는 생각은

"미안하지만 안 되겠다."라는 

대답을 내 입에서 바로 이끌어 내었다.


순간 그녀의 얼굴엔 실망으로 그늘이 드리웠다.

월요일 아침에 입어야 하니 어떻게 안 되겠냐고

거의 울상이 된 그녀의 얼굴을 보며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 그래 한 시간 더 참으면 

그녀의 곤란함을 해결해 줄 수 있는데 ----

내가 좀 참자."


내가 오늘 해 주겠다고 하자

그녀의 표정은 구겨진 옷을 다림질 한 것처럼

다시 반질반질하게 펴졌다.


명랑하게 세탁소 문을 나서는 그녀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You owe me one!"


나에게 빚진 것이 있으니

언젠가 갚으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녀가 어렵고 힘든 환경에 처하고 있을 때라도

고통스러운 환자 누군가가 도움을 청하면

거절하지 말고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을 그리 표현한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나부터도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뒤돌아 보면

내 가족과 이웃들의 희생과 헌신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진실로 남에게 정말로 많은 빚을 지고 살아가는 나에게

어떻게 빚을 갚으며 살아야 하는 지를

그녀는 솜털 보송보송한 미소로 

내게 일깨워 준 것이었다.


더위 한 시간 더 견디면

세상은 훨씬 더 밝고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