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태어난 아이 2016. 9. 1. 21:21

9월 1일이다.

9월 1일이 뭣이 그리 중허냐고?

마님의 생신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사의 한 획을 귿는 분의 출생일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어제 8월 31일은 손자의 생일이었다.

손자 Desi.

예쁜 미소 천사.


그리고 오늘은 마님의 생신이지만

큰 딸이 학교에 가는 관계로 아이들을 봐 주어야 하기에

제대로 생일을 즐길 수가 없어서

어제 밤에 둘때 처제와 동서와 함께 생일을 지냈다.

처제와 동서가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해서 이루어진 행사(?)였다.


우리 넷이 간 곳은 롱아이랜드의 롱비치라는 곳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긴 롱아이랜드에 있는 롱비치는 모르긴 몰라도 길었다.

저녁 여덟 시 쯤 도착한 롱비치의 어느 식당 앞.

어둠이 슬금슬금 밀려오고 있었다.

하늘은 어둔 구름이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 식당은 아이리쉬 식당이긴 해도

치킨 윙을 전문으로 하는 것 같았다.

동서는 버팔로에서 박사 과정을 해서인지

새콤매콤한 버팔로 윙에 대한 추억과 애정이 많은 것 같았다.

추억이 깃든 음식을 먹을 때

추억과 시간 같은 것들도 함께 먹는 것이다.

나는 맥주와 함께 치킨 윙을 맛나게 먹었다.

흔히들 말 하는 치맥을 제대로 맛 보았다.


마님과 같이 있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는 말,

정말 맞는 것 같다.


기분 좋은 바닷바람이 물 비린내를 품고 와 우리에게 펼쳐 놓았다.

기분 좋은 밤이 익어갔다.


거기까지 가서 그냥 돌아올 수는 없는 일.

우리는 한 블락 떨어진 해변으로 향했다.

어둔 구름에 덮였지만

희디 흰 모래와 하얗게 갈기를 세운 파도가 몰려 오는 모습은 또렷이 보였다.

멀리 도시의 불빛이 아련하게 반짝였다.

신을 벗고 모래 위를 걸었다.

밀가루처럼 보드라웠다.

우리는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잠시 걸었다.


밤 바다는 원시다.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 우리는 원시가 되었다.


무아.


세탁소 안에서 흘린 땀은 벌써 바닷바람에 말랐다.

바람이 등을 떠 밀었다.


부르클린 아프트로 돌아 오는 중간에

카지노가 있다.


나는 전혀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우리끼리 '방앗간'이라고 부르는 곳에 들렸다.


일인당 20 달러.


나는 10 분만에 다 털렸다.

아무 정성이나 희망도 없이 눌러대는 버튼에

슬롯 머신도 날 번번히 외면한다.


우리 마님?

120 달러를 따셨단다.

원금 상환하고 80 달러를 30 분만에 따셨다.

천운을 타고 나셨다.


천운을 타고 나신 분이 천운인지

그 분과 함께 사는 사라과 이웃들이 천운인지 난 잘 모르겠다.


우리를 부르클린 아파트에 내려주고

마님은 그 밤에 차가 막히지 않아도

한 시간 넘게 걸리는 뉴저지 집으로 들어가셨다.

오늘 하루 손주들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 우리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딸네 집에서

이미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시작했을 우리 마님.


생일에 손주들을 돌보는 것을

손주들과의 만남의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마님.


천운을 타고 난 그 분의 열매를 맛 보는 것은

아무래도 본인보다는 

나를 비롯한 우리 식구들인 것 같다.


마님이 떠나간 자리엔 가로등이 반짝이고 있었다.

(가로등은 자기 좋으라고 불을 밝히는 것이 아니다. 

지나가는 사랍들을 위한 존재가 가로등이다.

마님의 은유적 표현.)


(다음 사진은 전화기로 처음 찍은 것들)





시강 옆 골목.

바닷가 하늘에 옅은 해의 빛이 묻어 있다.



우리가 식사를 했던 식당 앞에 세워둔 차

식당 이름이 'Lilly'




오랜 만에 맥주 한 병,

버팔로 윙과 함께 즐긴 치맥.



식사를 마치고 나니

어둠움이 깔렸다.



바람 맞았다.

(바닷 바람)




돌아오는 길에 카지노에서 30 분

나는 10 분 만에 20 달러를 잃었고

마님은 20 분 만에 120 달러를 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