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는 왕이로소이다

가을에 태어난 아이 2016. 6. 21. 23:41

나는 왕이로소이다


월요일 아침 부르클린 아파트에서 눈을 뜬건

아침 다섯 시 쯤이었다.

아침에 눈 뜨는 시간이 점점 일러지는 건 나이에 비례하는 것 같다.

작년까지만 해도 5시 반에서 여섯 시에 눈을 뜨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눈을 뜨는 시간이 5시로 당겨졌다.


옆자리를 힐끗 보니

마님도 눈을 뜬 것 같다.


"잘 잤어?"

생각 없이 의례적으로 물었다.

나의 물음에 잠긴 목소리의 대답이 흘러 나왔다.

"아니."


아차 싶었다.


마님이 안녕하시지 못한 아침을 맞고 있을 것이라는 걸 깨달은 건

마님의 대답을 듣는 순간이었다.

일요일 저녁 뉴저지 집을 떠나 

부르클린 아파트로 떠나오기 직전 일어난 사건 때문이었다.


마님은 월요일 하루 부르클린 아파트에서

일주일 동안 내가 먹을 일용할 양식을 준비하고

다른 일들도 처리한 후

다시 뉴저지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거의 일주일 동안 큰 딸 부부가

콜로라도 주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혼자 운전을 해야 하니 썬글라스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마님은 출발할 때가 되어서야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래 층에서 발견하지 못한 문제의 썬글라스를 찾으러

급기야는 딸네 식구가 살고 있는 위층으로 올라 갔고

마침 손자 Desi의 기저귀를 갈고 있던

사위의 주의를 분산시키며 뒤를 돌아보게 한 순간

Desi는 내 가슴 높이의 기저귀 가는 자리에서

마루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사건이 발생한 후 마님의 설명을 듣던 나도 소스라쳤는데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야 오죽했을까?

특히나 아이가 추락하는 모습을 목격한 

마님의 놀람의 정도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사위는 등을 돌리는 바람에 직접 보지는 못 했다.)


겨우 아이를 진정시키고

진작부터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차 안에서 기다리던 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던 마님의 목소리엔 풀기가 빠져 있었다.


마님은 아이에 대한 걱정과 함께

딸과 사이에 대한 미안한 감정까지 뒤섞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집을 나와 팰리사이드 파크웨이로 들어서기 전에 

마님은 차를 세우라고 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김기사다)

혹시라도 모르니 고속도로에 들어서기 전에 확인을 해야 겠다며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은 그 사이에 소아과 의사에게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Desi는 잠이 들었고

네 시간 후에 깨워서

아이의 눈을 살펴보라는 소아과 의사의 말을 우리에게 전했다.


아파트에 도착해서 잠 들기 전

마님은 딸에게서 아이가 괜찮은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사실 아이 다섯 키우며 온갖 사건, 사고와 마주치면서 

때론 견디고, 때론 이겨내며 지내온 역전 노장, 우리 부부가 아니던가.


나는 그런대로 잘 자고 일어났는데

마님은 아이 걱정, 딸 부부에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밤 내내 뒤척였던 것이다.


간 밤 마님의 몸에서 기가 다 빠져나갔다.

나는 그런 마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결국 서둘러 일을 마치고

내가 운전을 해서 

뉴저지 집으로 마님을 모시고 가면 될 것이었다.

충실한 김기사가 되면

잠도 못 자고 기운이 쏙 빠진 마님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다시 부르클린으로 나와야 된다는 부담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근 몇 년을 빼고는

20 년도 넘게 해 온 일이니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뉴저지 집으로 떠나는 차 안에서

마님에게 말했다.

"어서 오르시지요, 왕비님. 제가 뉴저지 왕궁까지 안전하고 편하게 모시겠습니다."


나는 김기사가 되어 마님을 모셨다.

나는 기꺼이 김기사가 됨으로써 왕이 되었다.

나는 왕비를 아내로 둔 남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왕비를 아내로 둔)

'나는 왕이로소이다.


(왕 되기 참 쉽죠,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