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친구여 우리 모두는 연리근입니다

가을에 태어난 아이 2016. 2. 9. 07:14



청계산 산행 - 친구여 그대와 나, 우리 모두는 연리근입니다.


한국 방문은 이민 생활을 하는 나에게는

소풍 갈 때 메던 '니꾸사꾸'와도 같습니다.


그 속엔

삶은 달걀이며 사탕과 과자, 그리고 김밥과 구운 오징어에 

운이 좋으면 코카콜라도 들어 있었지요

그 소풍 가방만 생각하면 늘 가슴이 뛰고 부풀어 오릅니다.

그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아주 소중한 것들로 채워진 소풍가방(니꾸사꾸) 

내겐 한국방문이지요.

 

다른 것들도 그렇지만

미제 코카콜라는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아주 귀한 존재였습니다.

한 모금의 콜라가 입에 흘러 들면 

달콤하고 짜릿한 맛이 황홀했지요.

코까지 찌릿해지는 코카콜라는 

소풍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친구들과의 만남은 소풍가방 속의 코카콜라입니다

 

이번 한국 방문 중에는 특별히 고등학교 동기들과의 만남에 

중점을 두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을 떠난 지 30년이 넘은데다가

고등학교 졸업 40 년이 되는 해가 되었으니

그 동안 잊고 지냈던 그리운 친구들의 얼굴을

다는 아니더라도 가능한 많이 보고 가고 싶었습니다.

 

도착 이튿날 정성껏 마련해준 환영회에서

만났던 친구들의 모습.

몇 번 만났던 친구들도 있고

40년 만에 처음으로 얼굴을 본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도저히 건너 뛸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거리가

만나는 순간 한 걸음 거리로 줄어들었습니다

반 걸음만 나가면 서로 껴안을 수 있는 거리에 우리는 있었습니다.

 

귀국환영 현수막이 눈에 보이는 친구들의 마음이라면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특별히 준비한 

삶은 달걀과 라면은 

보이지 않는 친구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이제야 이런 것들이 보이니

지금까지 나는 우정이나 사랑의 불감증 환자였음에 틀림 없습니다.

이제 친구들 덕에 불감증에서 벗어나

우정의 열락을 맛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분 좋아 평소엔 거의 마시지 않는 소주를 넉 잔이나 마셨습니다.

아쉬운 작별을 하며 헤어질 때

분당에 사는 친구 동희가 집에 가는 길을 안내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친구가 제안을 했습니다.

분당에 사는 동기들 몇이 

청계 산 산행을 하는데 함께 가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생각도 않았는데 대박 났습니다.

동기들 소식을 접하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이 산행이었습니다.

제법 긴 시간을 함께 걸으면 영혼까지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나는 친구들과의 산행을 그리 간절히 원했던 것입니다.

 

산행을 마치고 막걸리를 마시며 뒤 풀이 하는 사진을 볼 때마다

너무나 부러워서

내 삶의 버킷 리스트에 올려 놓고 살았는데

그것이 현실이 된다니 어찌 마음이 뛰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버스 한 번만 타면 분당까지 갈 수 있음에도

동희는 내가 머물고 있는 광주까지 차를 가지고 

고개를 하나 넘어왔습니다.

 

나는 이런 기회가 있을 거라는 걸 생각하지 못했기에

그냥 가벼운 운동화 차림으로 나섰습니다.

그리고 학교 선생을 할 때 학생들과 소풍을 갔던 기억 하나로

청계 산을 너무 쉽게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친구는 자기가 사는 아파트에 주차를 하며 트렁크를 열고

등산화로 바꿔 신으라고 했습니다.

등산 자켓도 여분으로 준비해왔습니다.

운동화 신고도 괜찮다고 고집을 부리긴 했으나

친구의 등산화로 바꿔 신었는데

내 고집만 부렸으면 큰 일 날 뻔 했다는 걸 산에 오르며

바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과 몇 번 소풍을 갔던

먼 기억 속의 청계 산이 아니었습니다.

 

청계 산 지하철 역에서 나까지 여섯 친구와

영일이 아내까지 일곱이 모였습니다.

학교 다니며 이리저리 얼굴을 스친 적이 있었겠지만

졸업한 후에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친구들이었습니다.

영일이와 동희는 온라인 상에서 사진으로만 낯이 익었을 뿐

다른 친구들은 나와는 얼굴도 잘 모르는 사이였습니다.

나는 동희를 통해 친구들과 서로 통성명을 하고

첫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나처럼 수줍음도 많고 낯가림이 심한 사람이

산행 길에 접어든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스스럼 없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친구들의 따뜻한 마음을

내게 열어주었기 때문이라 믿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청계 산은

내가 생각했던 '쉬운' 산이 아니었습니다.

거친 숨을 몰아 쉬어야 할 정도로

높고 경사진 오르막도 있고,

미끄러져 다칠 수 있는 내리막길도 곳곳에 있었습니다.

 

우리 일곱의 산행은 

같은 길에 있는 승용차나 자전거, 혹은 리어카의 주행처럼

격차가 있었지만

앞에선 사람은 속도를 늦추고

쳐진 사람은 투정 부리지 않고 

성심으로 선두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스스로 속도를 늦추는 사람의 마음과

처지지 않으려고 자신의 능력보다 

더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는 사람의 

다르기만 한 두 마음이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다르기만 한 두 마음이 

다른 모습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사랑이고 우정이라는 생각을 산행을 통해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다섯 시간의 산행을 통해

우리 모두는 산행을 끝내고

무사히 하산할 수 있었습니다.

다섯 시간의 산행을 통해 나는 친구들과 

참 많이 가까워 질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고등학교 3년이라는 시간을 

같은 울타리 안에서 보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요.

 

산행의 리더 역할을 맡아서

우리를 이끌어준 철주의 안내로

우리는 판교의 어느 음식점에서 마주보고 앉았습니다.

드디어 상상 속에서 맛보았던 막걸리도 마셨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안 마시는 술을

대낮에 마셨는데 이건 한 마디로 환상이었습니다.

 

기쁨 보다는 고통을 주는 것이 술이라는 생각이

술에 대한 나의 선입견입니다.

술만 마시면 졸리고 숨이 가빠지며

머리가 아파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친구가 따라주는 막걸리는 새로운 생명의 음료였습니다.

아마 목이 말랐던 까닭도 막걸리 맛에 보탬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친구들과 함께 했던

산행의 시간 동안 차곡차곡 적립된 사랑과 우정이

막걸리 속에 담겨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부터 막걸리는 내게 새로운 힘을 주는 

아주 상큼한 술로 기억될 것입니다.

마치도 어린 시절 소풍 가서 마시던 코카콜라처럼-------

 

청계 산 어느 자락을 지날 때

뿌리끼리 연결된 소나무를 보았습니다.

두 나무는 3미터 가량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여러 뿌리 중 하나가 서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뿌리가 흙에 덮였다면 

아무런 관계 없이

각기 제 자리에 서 있는 독립수라고 밖에 할 도리가 없더군요.

 

서로 다른 나무이긴 하지만

뿌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걸 

연리 근이라고 한다는 군요.

 

40년 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음에도

만나면 서먹서먹했던 안개가 순식간에 걷히고

빛의 속도로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음은

우리 삶의 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다는

우리의 집단 무의식 때문이 아닐까요?

 

그 무의식이 되 살아나

40년이나 훌쩍 지나간 시간임에도

서로를 알아보고 껴안으며

체온을 나눌 수 있게 하는 건 아닐까요?

 

친구들,

그대들과 나

우리 모두는 

어쩔 수 없이

서로 사랑하고 통해야 함을 숙명으로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맞아요,

 

우리는 서로 뿌리끼리 이어진 

연리 근입니다.


https://youtu.be/SYdQB6jS4z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