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둘째 사는 동네 Brooklyn Park Slope를 다녀와서

가을에 태어난 아이 2015. 11. 12. 07:51


Park Slope는 Brooklyn의 다운타운과 가까이 자리한 곳이다.

근처에 Prospect Park와 Brooklyn Botanic Garden도 있어서

자연 환경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라는 사실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둘 째 딸 부부가 지난 9월엔가 이 곳으로 이사를 갔다.

둘 째는 그곳이 살기가 그렇게 좋다고 침이 마르게 이야기하지만

솔직히 난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일단 거리가 좁은데다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어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차를 파킹하려면 또 얼마나 시간을 허비해야하는지 모른다.

아파트 렌트는 또 얼마나 비싼지 입이 벌어진다.

지금 사는 아파트도 한 달에 3000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One bed Room이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Studio에 가까운데

아무리 좋은 지역이라도 그렇지 

3천달러라는 소리만 들어도 자꾸 한숨이 터져나오는 가격이다.

둘이 벌어서 한 사람이 버는 건 꼬박 월세로 들어가니

보태주는 건 없어도 괜시리 내 손이 떨리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래도 그곳이 미국에서 제일 살기 좋은 열 곳 중 하나라고 하니

꼴값 제대로 하는 셈치면 뭐 그리 억울해할 일만도 아니다.


11월 1일 일요일.

아내와 난 길을 나서 Park Slope로 향했다.

New York Marathon 코스가 둘째네 동네를 지나는데

이왕 구경하는 것 둘째네 동네에서 같이 구경도 하고 밥도 한 끼 같이 먹자는 의도에서였다.

게다가 둘째의 오랜 친구인 Jeff도 마라톤에 출전한다고 하니

이래저래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건물 신축을 위해서 빈 땅 둘레를 막아 놓은 것 같은데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한 장.

나의 호기심은 이런 것도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

                                            


딸 네 집은 7 Ave.

마라톤 코스는 4 Ave.

이른 시간인데도 4 Avenue는 가로지를 수 없었다. 

그 전 블락부터 차가 들어갈 수 없도록 막아 놓았기 때문이었다.

할 수 없이 겨우 3 Avenue에 차를 세우고 걸었다.

5 Avenue부터 숫자가 많아지면서

동네와 상가는 품위가 더 하는 것 같았다.

4 Avenue보다 숫자가 적은 거리는 게토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4 Avenue와 President Street이만나는 코너에

 새로 연 델리 가게 옆에서 한 장.



이른 시간부터 Band는 달리는 사람이나 구경나온 사람들 보다는

자기들 흥에 겨워 연주를 하는 듯 싶었다.

까페 이름이 Brown Stone.

이 동네는 Brown Stone으로 지은 건물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담쟁이 덩쿨로 곱게 덥힌 집들도

아주 많이 눈에 띄었다.



바로 전날이 할로윈 데이여서

집집마다 할로윈 장식이 남아 있었다.




할로윈 호박에 그린 그림도

어딘가 예술적 감각이 있어 보였다.



딸네 집 바로 옆에 있는 성당 마당의 나팔꽃.




Brown Stone으로 지은 집




사위 Brian의 운동화

누가 거저 주어도 나는 신을 용기가 없는----



딸에게 전화를 했더니 쇼핑 중이란다.

전화로 위치를 알려 주어서 거기서 만났다.


Co-Op으로 운영된다고 했다.

협동조합이라고 하면 맞을까 모르겠다.

유급 직원 몇을 빼곤 회원들이 일을 한다.

일반인은 물건 구입은 커녕 입장도 할 수 없어서

윗층의 사무실에 가서 신원 확인을 하고 

임시 출입증을 받아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구경만 할 뿐 물건 구입도 할 수 없고

회원 또한 비회원을 위한 구입도 철저히 금지된다고 한다.


인건비가 거의 들지 않으니 물건값이 일반 수퍼 마켓보다 훨씬 싸다고 하는데

얼마나 싼 지는 나야 알 도리가 없다.

둘째도 한 달에 몇 시간 일을 한다고 하는데

분명한 것은 회원들 간의 믿음이 바탕이 되어

서로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요일 아침, 결코 넓지 않은 매장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서서 

몸을 제대로 움직이기 불편하지만

좁은 통로에서 마추친 이웃에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길을 터주며

미소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광경은

지상에서 볼 수 있는 천국의 모습이 이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곳엔 플라스틱 백이 없다.

자기 백을 가져 오거나

상품을 진열하고 남은 종이 박스를 이용한다.


20여대가 넘는 캐쉬어는 쉴 틈도 거의 없어 보일 정도로 바빴다.



길 가의 화단.

노랗게 말라가는 화초 밑에 

누군가가 색칠해 놓은 돌멩이 하나.


그 누군가의 마음.



이 곳은 훌륭한 학교 시스템과 아울러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맛난 음식을 제공하는 

Top-Rared 식당이 많은 곳으로도 

이름이 났다.




동네 짜투리땅을 위용해

꽃과 채소를 가꾼다.

회원들이 마라톤 데이를 맞아

케익과 쿠키를 구워  팔고 있었다.



열심히 달리는J eff를 응원하느라 두꺼운 종이로 JEFF를 오려 만든 응원 카드.

J를 내게 흔들어 보이고 있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내가 한 눈을 팔자

빨리 걸음을 서두르라는 뜻일 게다.


아닌게 아니라 나도 무척 배가 고팠다.





식당은 붐볐다.

20여 분을 기다려 자리를 잡았다.

이 곳의 식당은 음식값이 만만치 않다.


두 째 딸이 이 곳에 살면서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에

비싼 월세를 감당하며 사는 것 같이

이 한 끼의 점심 식사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맛도 맛이지만 딸 부부와 함께 평화로이 보낸 시간을 

돈으로 살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에 가치를 두며 살 것인가.


딸과 함께 했던 11월 첫 일요일 아침은

돈과 삶의 가치름 곰곰히 씹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