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난 어떤 물과 같은 사람인가

가을에 태어난 아이 2015. 8. 29. 09:28

난 어떤 물과 같은 사람인가.

나는 주일 아침마다 축구를 하는데

2주 전 주일 아침엔 그렇게 더울 수가 없었어요.

눈에 보이진 않아도

습기가 마치도 목욕탕 유리창에 모여 있는 물방울처럼

빼곡하게 싸여 있는 것 같았고

온도도 만만치 않게 높아서

그야말로 커다란 찜질방에서 축구를 하는 것 같이

고통스럽기까지 하더군요.

운동 시작하기도 전에 땀으로 옷이 거의 다 젖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런 날은 아르바이트 하는 학생들 시켜서

대신 공을 차게 하자는 농담을 주고 받으며 게임을 하는데

더위엔 마치 엿가락처럼이나 약한데다가

나이도 제일 많은 내가 쉽게 지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지요.

그러니 갈증은 또 오죽했겠어요?

휴식 시간이 되어서 물병 뚜껑을 열고 물을 한 모금 들이켰습니다.

집을 나서면서 냉장고에서 꺼내왔음에도 불구하고

내 물병의 물은 햇볕과 열기때문에 미지근해져서

물맛이 전혀 없더라구요.

그런데 우리 중 두 사람은

물통을 밤새 얼려서 가져온 까닭으로

얼음 녹은 물맛이 몸 갚숙하게 침입한 더위를 식혀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물론 그 물을 얻어 마셨지요.

생명수, 감로, 사막의 오아시스같은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정말이지 죽다가 다시 살아난듯한 느낌이 다 들었으니

그 물이 얼마나 시원하고 더위를 식혀주었는지

이해가 가실 거예요.

그리고도 얼음이 다 안 녹아서

내가 가지고 간 물까지

그형제의 물통 속에 넣고

게임 끝날 때까지 많은 이들이 그 시원한 물을

나누어 마실 수가 있었어요.

그날 난 이런 생각을 해보았어요.

나는 이 더운 여름날

과연 어떤 종류의 물과 같은 사람인가를 말이지요

밤새 물을 얼려야 하는 수고로운 시간을 통해

이웃에게 갈증을 풀어주는 얼음물 같은 존재인가,

아니면 처음엔 시원했지만

더위 때문에 미지근해져서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별로 마시고 싶지 않고

남에게는 더더군다나 권할 수 없는

미적지근한 물과 같은 존재인가,

그것도 아니면 아예 물을 채우지 않은 그냥 빈 병처럼

자신도 마실 수 없을 뿐더러

남에게도 아무 것도 나눠줄 것이 없는

그런 쓸모 없는 존재인가를 말이죠.


혼자 얼굴이 빨개졌던 그날의 기억이 새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