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밤의 꿈값
지난 주말엔 어디에서 잤냐구?
알 수가 없겠지.
하나도 안 궁금하다고?
그래도 내 입이 근질거려 얘기를 안 하고는 못 견딜 것같으니 좀 들어줘.
단도직입적으로 요즘 한창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열이 오르고 있는
도날드 트럼프가 사장인가 회장으로 있는 도날드 트럼프 호텔 17층 suite에서잤거든
절대로 으시대거나 허세를 부리려고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니야.
왜?
'그냥', 이라고 하면 너무 성의가 없는 것 같고
또 굳이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기도 해서
이유를 밝혀보면,
아내가 그 호텔의 HR(human resource)부서에서 매니저로 근무하는 조카의 옆구리를 찔러서였지.
일년에 몇 차례 직원들에게 아주 비싼 방을 싼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사실을 주워들은 아내가
조카에게 미리 부탁을 했고
친한 부부들끼리 모여 하룻밤을
맨하탄 중심부에서 로맨틱하게 보내려는 아주 가상한 마음으로 시작한 거지.
결국 사정 때문에 그 부부들고 함께 하지 못하게 되니
꿩 대신 닭이라고
장인 장모님과 우리 부부,
그리고 두 처제 부부-이렇게 네 커플이
1700 호와 1702호 이렇게 Suite 둘을 얻어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 거지.
하나도 듣고 싶지 않다고?
나도 그만 두고 싶은데 이왕 시작했으니
인내심을 가지고 좀 더 더 들어봐.
그런데 그 Suite이 일단 무지 넓어.
Suite 하나에 침실이 둘 있는데 침실에 화장실이 하나씩 딸려 있고
아주 넓은 거실과 부엌도 있어서 음식도 직접 만들어 먹을 수도 있어.
무엇보다도 거실은 버튼을 하나 누르면
커튼이 스르르열리며 센트럴 파크와
주변의 건물들이 만들어 내는 파노라마를 제공한다는 점이지.
영어 속담에 'Money talks.'라는 말이 있듯이
돈의 위력이 참 대단하긴 해.
오후의 해지는 센트럴 파크의 모습과 건물들의 야경,
다음날 아침의 해뜨는 모습까지
높은 곳에서 볼 수 있었으니 더 말해 뭘해.
호텔은 출입문이 둘이더군.
한 쪽은 호텔, 다른 한 쪽은 거기 살고 있는 주민용이지.
우리가 묵었던 호텔은 17층까지이고
주민들은 18층부터 52층(?)에 살고 있다고 들었어.
그런데 놀라지마.
원래 우리가 묵었던 suite 하나의 대여료가 하룻밤에 2,100달러나 된다는 거야.
그러니 원래 가격은 두 채를 얻었으니 4,200여 달러,
세금을 포함하면 5천 달러에 이른다는 거야.
어디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이 그런데서 잘 수 있겠어.
다 조카 덕이지.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어.
아내와 나의 의견 차이 때문이지.
우리가 호텔에 지불한 돈은
suite 하나에 300달러,
둘을 얻었으니 600달러에 세금을 포함하면
700달러 가량이었을 거야.
집에서 자도 될 걸 공연히 밖에서 자는 바람에
700달러에다가 하룻밤 파킹 요금 60달러를 포함해
거의 800달러를 낭비했다고 생각하는데
아내는원래 호텔 숙박비 5천 달러에서
우리가 지불한 800여 달러를 제외한
4천 달러 가량 이익을 보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익을 보았다면 남은 4천 달러는 어디 있냐는 말이야, 내 말은.
대신 우리 구좌에서 어김없이 800여 달러의 돈은
사라졌는데 말이지.
도대체 누가 옳은 거야?
아내에게 볼멘 소리 했더니
아무나 그런데서 잘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하룻밤 그런데서 잘 수 있는 사람 몇 안된다고-----
그런 추억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라고----
뭐 좋은 꿈을 꾼 것도 아니고
난 내 자리에서 자는 게 훨씬 낫던데----
어쨌든 이미 지나간 일,
숙박비는 이미 지불해서 구좌의 잔고는 헐렁해진걸.
그래서 말인데 한 여름 밤의 꿈값으로 얼마가 적당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