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위복
전화위복
전화위복이란 말은 현재의 재앙이나 불행이 나중에 복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일상에서도 드물지 않게 쓰는 말인데
흔히들 불행한 일을 당한 사람을 위로하느라 쓰긴 하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이 내게 닥쳐도
난 거의 그 말을 신뢰하지 않고 살아왔다.
지금이야 나이가 먹고 인생사 돌아가는 게 조금은 눈에 보이니 덜 하지만
나는 삶을 일단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새옹지마 같은 이야기도 결국 옛날이야기일 따름이지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고
더구나 뽑기나 사다리 타기 같은 놀이에서도 제대로 한 탕 해 본 기억이 없는 나에게
불행이 바뀌어 행운이 된다는 건 그냥 말장난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내가 이럼에도 내 아내 같은 경우는 이 말의 절대적인 신봉자이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닥쳐도 다 잘 되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어서
때로 힘들고 약이 올라 있는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해서는
내 열 받은 머릿속에 휘발유를 붓곤 한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내의 믿음도
어느 정도 맞는다는 걸 부정할 수 없게 되는데
삶이라는 게 결국 돌고 도는 것이어서
전화위복이 되고 전복위화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전화위복이 이번 캐나다 여행에서
우리에게 실제 상황이 되어 현실이 된 사건이 일어났다.
캐나다 여행의 대미 룰 장식할 방문지로 Cape Breton Island의 Carbot Trail를 꼽았는데는
동서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의 부총장이 강력히 추천한 곳이었다.
아내는 이 섬의 초입에 있는 Inn 하나를 얘 약해 두었는데
그곳을 찾아가면서도 사뭇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저녁 식사 후엔 산길을 호젓이 산책하자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런데 막상 목적지에 도착해 보니
한적한 마을의 중간을 가로지르는 도로 옆에 그 Inn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 후 호젓한 산길 산책은 이미 물 건너가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묵기로 한 Inn은 겉에서 보기로는 제법 깨끗했다.
아내 말로는 다녀간 사람들의 평이 아주 좋아서 결정했다고 했단다.
무엇보다도 아침 식사가 훌륭하다고 했다는 말에
하룻밤 어디서 자든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로 화답했다.
check-in을 하는데 매니저가 나와서 다른 곳에서 하루를 묵으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사정인 즉, 단체 손님이 왔는데 방이 하나가 부족하다는 거였다.
우리가 양보를 하면 자기들이 다른 방을 알아봐서 숙박료를 지급하겠다는 것이 매니저가 한 제안의 요지였다.
인터넷으로 예약은 했지만 숙박료는 지불하기 전이었다.
140 달러가 굳는 순간이었다.
실망이 환희로 바뀌었다.
옆으로 처지는 입꼬리를 애써 감추며 우리는 매니저가 가르쳐준 모텔로 향했다.
우여곡절 끝에 바로 문제의 모텔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 모텔은 너무나 허름하고 엉성했다.
밖에서 언뜻 보아도 방에서 곰팡이 냄새가 나는 듯했다.
들어가 보니 방은 비좁고 침대에서는 삐걱거리는 스프링 소리가 났다.
참으로 난감했다.
잠시 '하룻밤 공짜'가 주던 기쁨도 사라졌다.
하룻밤을 비나 이슬을 피할 수는 있으니 그럭저럭 하룻밤 자 버티자는 결심만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갈팡질팡 하던 우리에게 고맙게도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그 모텔은 다른 시설도 열악하기 짝이 없었는데
특히 고맙게도 wi-fi 사정이 너무 좋질 않았다.
제대로 전화 통화를 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에 동서는 9개 나라의 대학 관계자와
국제 conference call이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결정적으로 거기에 머무를 수 없다는 아주 좋은 구실을 만들어 주었다.
우린 다시 원래 예약했던 Inn으로 돌아가 근무하는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우리가 돈을 내도 좋으니 좋은 곳으로 안내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매니저는 이미 퇴근을 한 후였다. 그
런데 일이 잘 되려고 그랬던지 사정을 들은 담당 직원의 입을 통해서 천기가 누설되었다.
우리가 가려는 Carbot Trail이 시작되는 부근에
같은 자매 회사에서 운영하는 resort motel이 있는데 거길 알아봐 주겠다는 거였다.
이보다 더 이상 좋을 순 없었다.
그 직원은 그곳에 전화를 해서 방을 알아보더니
독립 건물에 딸린 방 두 개짜리 Suite이 하나 남았다고 했다.
원래 하루에 350달러에서 500달러 하는데 무료로 머물게 해 주겠다고 하는데
매니저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직원은 이미 퇴근한 매니저에게 전화를 해서 결국 허락을 얻어냈다.
'전화위복'이 구현되는 순간의 그 짜릿한 흥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세상에,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하며
모두 흥분으로 들떠서 목적지로 향했다.
흐렸던 날씨도 살짝 개면서 가는 길 내내 우릴 따라오던
호수의 일몰도 보았다.
모기에 뜯기면서 호수를 거닐기도 했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 깊었다.
check-in을 하고 우리 방을 찾아가 보니 산 밑에 단독 건물이 있었다.
침실 둘과 거실과 주방이 딸린 아주 넓고 쾌적한 곳이었다.
아내가 우리 밭에서 딴 고추와 상추 같은 음식을 그릇과 접시에 담아 식탁을 가득 채워 가며
아주 우아한 저녁식사도 했다.
다음 날 아침 선선했던 날씨에 비까지 내리는 덕분에
우린 벽난로까지 때며 커피를 마시는 호사를, 그것도 여행 중에 누렸다.
결국 '전화위복'은 사실로 존재했다.
우리가 만났던 Inn의 직원은 성심성의를 다 해서
어려움에 처한 우릴 위해 애써 주었고
그 결과 우린(특히 나) 사전 속에 갇혀만 있던 '전화위복'이란 단어를
세상의 밝은 빛으로 꺼내어 놓을 수 있었다.
전화위복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 그리고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씨가 모여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었다.
동서는 그 직원에게 자기 명함을 한 장 내밀었다.
그리고 늘 반복되는 레퍼토리이긴 하지만
"뉴욕에 들릴 기회가 있으면 전화하세요. 내가 점심을 사리다."
하는 말을 덧붙였다.
옆에서 보기에 동서는 명함 돌리기를 조금 남발하는 경향이 있긴 한데
사실은 솔직한 동서의 마음 표현이다.
그 직원에게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명함과 함께 고맙다는 인사말이야말로
최선의 인사가 아닐까 하는데
명함 한 장 가져보지 못한 내가 동서에게 부러움을 느낄 때가 바로 이런 때이다.
나중에 넌지시 동서에게 물어보았다.
정말 전화를 거는 사람이 있나고?
점심을 같이 먹은 사람이 몇 명 있었단다.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전화위복'
나도 누군가에게 '전화위복'을 이루어주기 위 해어 떤 마음가짐을 살아야 할지 잠시 눈을 감아본다.
전화위복은 수동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능동태 임을------
우리가 처음 예약했던 Inn 건너편의 맥도널드. 이곳에선 랍스터 버거 (MacLobster)를 팔았다.
아내는 여행 떠나기 전부터 별렀다.
이 지방의 맥도널드에서만 파는 랍스터 버거 맛을 꼭 보고야 말겠노라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갔다.
아는 게 많으면 먹고 싶은 것도 많은가?
그러면 난 먹고 싶은 게 별로 없어야 되는 셈이다.
우리가 하루 머물렀던
Silver Dust Inn이 고장을 사랑했던 Bell(전화기 발명한 사람)이 여기 살면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만들어 띄웠는데
그 비행기 이름이 'Silver Dust'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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