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저녁 단상

가을에 태어난 아이 2015. 7. 29. 01:59

저녁 단상.

- 저물녘엔 가슴이 먹먹해진다.

-노을이 황홀하게 붉은 저녁이면 가슴은 더더욱 먹먹하다.

-햇살이 금빛을 띄고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

그림자는 가장 길고 막 갈아놓은 먹물처럼 검고 어둡다.

-내가 사랑하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낮 동안 잊고 살다 해질녘이면 다시 떠오르는 얼굴들.

-우리 세탁소 옆, 델리가게 앞에서 좌판을 벌리고 있는 무하마드.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 왔다던가,

부인이 둘인 그는 비행기 삯이 없어

자기나라에 다녀오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단다.

그의 그림자도 길고 어두운 오늘 저녁.

바깥의 소음 때문에 때로 우리 세탁소 안으로 들어와

자기 나라에 전화를 하는

그의 목소리에도

짙은그늘이 드리웠다.

-내 삶의 해는 서쪽 하늘 어디 쯤 너머가고 있는 걸까.

-저물녘이면 목놓아 울고 싶어진다.

사랑하리라 다짐하곤 그렇게 살지 못한 나, 그리고 시간들,

나를 배신한 내가 흘려야 할 속죄의 눈물.

닭이 울 때 세 번이나 예수를 배반하고는

슬피 울었던 베드로의 피같은 울음.

나는 얼마나 더 울어야

배드로처럼 순결한 울음을 울 수 있을까.

-문을 내리고 자물통을 채운다.

나도 휴식의 시간으로 가라 안고 싶어진다.

세탁소 안도 어둠이 채웠을 것이다.

이 저녁이 모두에게 안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색한 나도 저녁이면

조금 너그러워지는 걸 보면

저물 녘엔 무언가 여유가 있는 것 같다.

-그래 못다한 오늘의 사랑은

내일로 미루자.

-내일이 있음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편안히 쉬는 일이다.

 저녁의 넓은 품에 안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