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22(의 넋두리)
3일 차다.
우리 세탁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Efren이 휴가를 떠난 지.
Efrend은 옷 세탁을 하고 세탁기계를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처음 일년에 한 차례 하는휴가 날짜를 잡을 때부터
왜 그리 내 마음이 불편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카운터 일을 하면서
30 미터 뒤에 있는 세탁기계를 돌리며 빨래를 해야 하는
현실을 마주치기가 겁이나서였을 것이다.
내가 나이가 먹었다는 증거인지
아니면 정신력이 고갈이 된 것인지.
예전엔
'그래 어디 한 번 해 보는 거야' 하고 김광석처럼
전의를 불사르기도 했는데
이젠 그런 것들이 다아
싫다, 싫어.
Efren은 떠났고
바깥 기온이 화씨 90도가 넘는(세탁소 안의 온도는 화씨 100도)
맵고 독한 날씨 이틀을
한증막 속에서 버텼다.
새벽에 가게 문을 열고(실제로는 안에서 잠그고)
땀을 흘리며
몇 로드의 세탁 일을 끝냈다.
가게 문을 닫고서도
한 시간 더 일을 해야 했다.
가게 문이 열려 있는 열 두 시간은
손님들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사흘 째.
어제 점심 때 쯤 아내가 내려다 준 냉 커피의 카페인 영향 때문이지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다섯 시에 일어났다.
커피를 내렸다.
커피 맛이 어떻고 하지만
커피 맛은 커피의 향기를 따라가지 못한다.
커피를 갈고 물이 섞여지는 순간
커피의 처녀성도 끝이 난다.
커피의 향은 말하자면 커피의 처녀성이다.
새벽 공기가
지난 주말부터 계속되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곧기 중의 수분이 아주 고운 체로 거른 것처럼
제법 뽀송뽀송하다.
어제 저녁에 대충 일을 끝냈기에
두어 로드만 하면
아침에 해야할 클리닝 일은 마무리되는 셈이었다.
그런데 정말
OMG!
어제 저녁 한 여자 손님이 들고온
linen Jacket에 눈이 가는 순간 온 몸 안에 있는
뼈가 내 몸을 이탈하는 것 같았다.
어디 한 달 가량 이 옷을 입고 노숙을 했는지
어디 한 군데 빈틈도 없이
속속들이 때와 얼룩이 묻어있는 그 옷은
나의 전의를 초기부터 꺾어놓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옷을 받을 때부터
(아이구 내 팔자)하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화장까지 단정하게 했던 그 여자 손님의
속옷 상태까지 상상해가며
난 그 여자를 증오하고 경멸했었다.
그런데 운명이란 게 있지 않은가.
회피할 수 없다면 맞서야지.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도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어럼 비집고 들어왔다.
어디 사람들이 시간이 남아돌아
그런 말들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백여 명의 적을 앞에 두고 벌이는 사투라고 하면
(아주)많이 과장이 되었을 터이지만
한 명을 무찌르고도
현장을 목격하지 못한 사람들 앞에서
100 명도 넘게 격퇴했다고
손짓 발짓까지 양념으로 넣어가며
영양가도 없고 더군다나 먹지도 못하는
맛난 을식을 만들어내는 그런 허풍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허풍에도 조금의 진실은 들어 있는 법.
그 한 옷에 매달려 한 30여분 사투를 벌렸다.
때리고 문지르고, 때론 토닥거리다 보니 30분이 훌쩍 지나버렸다.
드디어 나의 포로가 된 그 옷을 세탁 기계에 넣고
돌.렸.다.
처음 이 옷을 쳐다 보면서 했던 OMG이
세탁이 끝난 후에 또 입에서 튀어나왔다.
완벽한 수미쌍관이었다.
그러나 머리의 그것과 꼬리의 그것에는
측량이 불가능한 차이가 있었다
흔히 tv 광고에서 보는 'before, and 'after'의 전형이었다.
이럴 수가!
tv 광고야 액간의(때론 엄청난) 눈속임이 있을 수 있음을
너그럽게 인정하더라도
이 것은 내가 하고도 내가 놀래버린
현실이었다.
그 희열은 말로 표현하기 힘이 들었다.
내가 그 옷에 쏟아부은 30분은
이 희열을 준비하기 위한 전희였다.
내 하루가 축복을 받은 것 같았다.
세상의 어렵고 힘든 일에는
분명 단 열매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면서 Efren이 벌써 10여년 이런 일을 하면서도
버티어 내는 걸 보면
단 열매를 은밀하게 맛보는 희열 때문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했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힘든일 해온 Efren이 고맙다.
(그 희열은 어쩌다 한 번이면 족하다. 하루에 몇 번 그 희열을 맛보려면 목숨을 담보로 내 놓아야 한다.. 노약자들은 따라하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