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태어난 아이 2015. 5. 30. 07:36



들꽃을 찾아서


지난 주말은 Memorial Day가 끼어서

월요일까지 하루를 더 쉬었다.

우리부부와 동서부부는 Pensylvania주에 있는 Bushkill 폭포에 다녀왔다.

아내는 밋밋하고 맛이 없는 하이웨이보다는

시골길을 찾아서 그리 가보자 하였다.

시간이 많이 더 걸리는 것도 아니고 해서

시골길을 택해서 다녀왔는데

정말 자연 속에서의 힐링이라는게

이런 거구나 하는 체험을 했다.

사방 푸른 나무와 풀들,

그리고 키작은 들꽃들과 눈 맞추며 

아름다운 여행을 했다.






우리집에도 장미가 막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 5월이다.


너무 바쁘니 세월을 가끔씩 잊고 산다.

집 떠나기 직전에 한 장.



New Jersey와 Pennsylvania 주 경계 쯤 되는 곳에 

핀 꽃 유채 .


이 핑크와 보라, 그리고 흰 빛이 나는

꽃 유채는 우리가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우리를 손 흔들며 맞아 주었다.












내 맘에도 이 핑크 빛 꽃물이

번졌다.




풀 숲의 노란 꽃,

그리고 연보라 꽃.

세상의 들꽃은 참 종류가 많기도 하다.

이름을 아는 꽃이 거의 없다.

이름을 모른다는 건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사랑하고 싶은데

이름을 외울 엄두가 나질 않는다.

이름을 알아내는 것부터가 귀찮다.

진정 들꽃 사랑의 마음은 거짓인 것 같다.


난 누굴,

무엇을 사랑하는데

참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다.



지나가는 길에

폐가가 눈에 띄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노릇이다.


허물어지는 것,

쇠락해가는 것-----


이런 것들을 사진에 담고 싶어진다.


은퇴해서 시간이 나면

이런 것들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하고 싶다.


아마도 내 나이가 고갯길을

내려가는 때여서 더 그럴 것이다.





언젠가 누군가가 살았던 집.

이층의 창문틀이 기이하게 푸르다.


햇살이 잘 비치는 연두빛 풀빛이 슬프게 빛이 난다.


불루와 그린의

아주 어울리지 않는 동거


연두빛이 슬픈 걸

처음 알았다.



어둔 집 안의 공간을 지나면

풀숲이 펼쳐저 있다.


집 안이 너무 어둡다-----




무슨 건물이었을까?


지붕은 불에 탄 흔적이 남아 있고

건물 벽엔 온도계 같은 것도 달려 있다.


노란 통 하나

그리고 하얀 통 하나.


사람이 살던 때는

모두다 요긴하게 쓰였을 것이다.



폐허가 된 집터에서

그저 즐거운 추억거리를 만들고 있는 우리.


하기야 내가 지금 있는 자리도

누군가가 예전에 살다 떠난 자리고

누군가가 삶을 마감했던 자리일 수도 있겠다.

시계를 저 먼 선사시대까지 돌려 놓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저 들꽃 뿐 아니라

나같은 인간도 

따지고 보면 

먼저 간 죽음 위에서 꽃 피는 존재가 아닐까



우리가 가는 길 옆에 보이는 산등성이에

 무수히 피어 있는 아카시아 꽃

그렇게 길을 다니면서도

그것이 아카시아인 줄 몰랐다.


가까이서 보니

빛과 향기가 만져졌다.


어린 시절 꽃 한 줌 훑어

입 안에 넣으면 향기가 입 안 그득해지던

그 아카시아의 향기가----




폭포 구경을 마치고 돌아나오는 길엔

아예 차의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런데 창 밖에서 흘러들어오는

냄새가 낯이 익었다.


누군가가 뻔데기 냄새가 난다고 했다.


우린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어린 시절 뻔데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 놓았다.




결국 뻔데기 냄새는

길 가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이 꽃의 '향기'로 밝혀졌다.


그 흰 빛이 내는 향기가

향기라고 하기 보다는 어찌 냄새 쪽에 더 가까운지,

좀 안타까웠다.


아주 예쁜 여자 아이의 이름이

나중에 알고 보니 아주 촌스러움을 알고 난 후의 느낌이랄까.


그 꽃의 향기는 몰랐던 편이 훨씬 나을 뻔 했다.

여자 아이의 얼굴만 기억나는 것이 

나았던 것처럼.











노란 색 꽃.


저 꽃에서도 뻔데기 냄새가 나는지

확인을 못 했다.





노란 꽃잎이 지고 난 

민들레 꽃씨도

지천으로 널렸다.


마치 유령의 마을 같았다.


 불면

흩어져 버릴 -----


그러나 부활을 꿈꾸는 희망.



다음은 New York주의 Stormville이라는 마을에서 만난 꽃 유채







들판 가장자리에 핀 노란 꽃.


사진을 찍는데

뉴욕주 로고가 있는 트럭을 탄 사나이가

접근해 왔다.


검은 안경에 머리는 싹 밀었다.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목소리를 아주 낮게 깔면서 이렇게 말했다.


"May I help you?"


이 들판에서 우릴 도울 일이 뭐 있단 말인가.

니들 도대체 여기서 무슨 수작하고 있느냐는 뜻이다.


"Isn't it beautiful? We are just taking photos."


그랬더니 썩 물러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뉴욕주 소유의 땅이니

당장 나가라고 했다.


달리 할 말이 없어서 길 건너 편에 세워둔

차로 돌아 왔다.

길 모퉁이를 돌아가면

거기에 뉴욕주의 감옥이 있는데

그 감옥의 땅이 거기까지인 줄은 몰랐다.


그래도 사진 몇 장은 찍었다.

꽃들도 뉴옥 주 소유니 내어 놓으라는 소리는 다행히 하지 않았다.



집에 오는 길에

Seven Lake로 돌아오기로 했다.





기도 하다.

이름 모를 풀꽃들이---

마음먹고 찾아다니질 않아서 그렇지

풀 숲에 참 많이들 산다.


길 가에 핀 꽃들만 대충 보고 왔다.






물 가에 핀 이 꽃은 또 누굴까.


참 낯선 꽃이 많기도 하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참 예쁘고 사랑스럽다.

그래서 난 야생화라는 말을 감히 쓰지 못한다.


야생이란 말이 풍기는 

거칠고 조악한 이미지를 들꽃에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들꽃 혹은 풀꽃이라 부른다.


이런 풀꽃과 눈 맞추기 위해선

무릎을 꿇거나 쪼그려 앉아야 한다.

들꽃의 키가 작아서이다.


낮아지는 사람에게만 그 소박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빨리 지나치면 볼 수 없다.

찬찬히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천천히 시간을 갖고 바라보는 일이 곧 사랑이 아닐까?

천천히 바라보기는

비단  들꽃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가족, 이웃도 마친가지다.


천천히 눈 맞추며 바라보는일,

그리고 나즉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일.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