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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나쁜 친구(들)의 전성시대 2

나쁜 친구(들)의 전성시대 2

어제는 고등학교 친구 한 명을 만났다.

 

76 년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몇 년이 빠진 50 년만이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된다는,

제법 과장이 버무려진 표현이 어울리는 세월이다.

내가 한국에 오기 일주일 전에 

한국여행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온 친구가

내게 전화를 했다.

"학선아, 한국에 가면 K 한 번 만나고 와. 그 친구가 널 보고 싶어 해."

그리고 내게 몇 차례 그 친구와 꼭 만나고 오라고 문자로 닦달(?)을 했다.

앞으로도 뉴욕에서 계속 얼굴을 봐야 할 친구의 닦달을 이겨낼 재주는 없었다.

그래서 어제 마침내 K를 만나 회포를 풀었다.

이로 해서 두 친구의 소원(?)을 풀어주었다.

 

K는 남대문 시장에 있는 수입상가에서 

25 년 동안 그릇 장사를 해왔다고 한다.

K는 나에게 예쁜 찻잔과 커피 잔을 각각 한 벌(부부용) 씩 내게 선물을 했다.

뉴욕 친구의 아내가 우리 아내가 여행지마다

부부 찻잔을 기념품으로 산다는 걸 K에게 귀띔을 해 준 모양이었다. 

 

K와 두어 시간 만나 청하를 곁들여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차도 함께 마시며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국에 살면서 그런 스타일의 돼지고기를 먹고 싶어 했다.)

 

그 친구는 자기가 겪었던 건강 문제를 나에게 털어놓았다.

고혈압과, 그리고 그 이후에 자신에게 찾아왔던 혀에 생긴 암 때문에

경험했던 두려움과 걱정이 내 마음에도 잠시 그늘을 드리우게 했다.

 

K는 아무런 증세를 감지하지 못하고 평화롭게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헌혈을 하겠다는 거룩한 원을 세우고 헌혈을 장소를 찾아갔다고 한다.

그런데 헌혈하기 전에 혈압검사를 했는데 위의 혈압이 220 가까이 나왔다고 한다.

친구도 놀랐고, 간호사는 더 놀랐던 모양이다.

놀란 마음을 안고 바로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찰을 받고

혈압약을 먹기 시작해서 얼마 뒤에는 혈압이 안정 상태에 이르게 되었단다.

 

K는 다시 헌혈을 하려는 갸륵한 마음을 먹었다.

피는 곧 생명이다.

누군가에게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피이고

헌혈을 하는 것은 생명을 나누어 주는 거룩한 행위이다.

나는 보시 중에서도 헌혈이 상보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때에도 또 거절을 당했단다.

이유는 한 마디로 피가 너무 더럽다는(?) 거였다.

고지혈증에, 중성지방 같이 피에 나쁜 내용물이 너무 많이 섞여 있어서

친구의 피는 쓸모가 없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친구의 헌혈에 대한 집념을 꺾을 수는 없었다.

직장 근처의 헬스 센터에서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얼마 동안 열심히 운동을 하고 몸무게를 10 kg 가량 감량을 했다.

그리고 헌혈을하러 갔다.

결국 K의 피는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데 쓰이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틈만 나면(?) 친구는 헌혈을 했다.

 

누군가를 위해 자기 피를 나누고 싶어 하는 그의 의지가

그의 생명을 살렸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고등학교 친구들도 많지만

나는 K에게서 작은 감동을 느꼈다. 

 

사실 나는 올 5 월에 헌혈을 했다.

내가 다니는 동네 성당의 헌혈 행사에 참여를 한 것이다.

피를 빼기 전에 혈압을 쟀는데 120/80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깨끗한 피를 누군가에게 나누어줄 수 있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서면서부터

일주일에 한 번 꼴로 헌혈을 하라는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헌혈을 하기 위해서는

헌혈 장소까지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서

매 번 미루고 가지 않았다.

 

K의 이야기를 들으며 슬그머니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내 건강하고 깨끗한 피를 나누는 데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백 년 만에 만난 친구 K는 결과적으로 참 나쁘다.

미뤄도 되는, 아니 아예 무시하고 살아도 되는

헌혈 요청에 응답하게 하니 말이다.

 

나는 지금 친구와의 점심 약속을 하러 외출하려 한다.

그 친구는 또 얼마나 나쁜 친구인지

만남의 기쁨과 더불어 작은 공포심(?)을 갖게 한다.

 

왜 내 친구들은 모두들 한결같이 나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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