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의 송가-Vega House에서 보낸 이틀
지난 주말에 Catskill에 있는 Vega House에 다녀왔다.
Esther 씨의 초대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Esther 씨는 아내와 이영주 선생과 함께
MET Trio의 막내 멤버이다.
MET Trio는 각 멤버의 영어 이름의 앞 자를 따서 만든 그룹이다.
아내 Maria, Esther, 그리고 이영주 선생의 영어 이름 Theresa
앞 글자인 MET가 모여 MET그룹을 형성한 것이다.
이영주 선생의 딸들로 이루어진 AHN Trio를 흉내 내어서 만든
MET Trio의 역사가 그리 길다고는 할 수 없으나
50 대와 60 대, 그리고 70대의 세 여인 멤버의 우정은
가장 견고하다고 알려진 삼각형의 구도처럼
끈끈하고 친밀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년에 Montana 주에서 열린 AHN Trio의 막내 결혼식에
세 여인이 함께 다녀오면서
그 연은 점점 더 숙성되어 가는 듯했으나
이영주 선생이 건강 악화로 세상과 이별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세 사람의 Trio도 자연적인 해체의 수순을 밟아야 했다.
Trio의 한 점이 소멸한 그 허허로움을 달래기 위해
Esther의 초대에 우리가 응답함으로
이틀 동안의 Vega House에서의
만남과 치유의 예절이 시작된 것이다.
만남과 치유의 예절이 뭐 별 것이던가.
함께 마주 보고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저절로 빈 마음이 채워지는 것을.
이야기가 멈추면
그냥 창 밖으로 펼쳐진 자연의 모습과
하늘 한 번 바라보면
마음의 그늘이 스르르 사라지는 것을.
Vega House에서 앞을 바라보면
앞산이 너그럽게 품을 벌리고 있다.
그곳은 그제야 막 봄이 시작되었는지
앞산은 발그스름한 나무꽃과 녹색의 나무꽃이 피어나
마치 울긋불긋 꽃대궐이 거기 있는 것 같았다.
내 기억으로 봄에는 초록빛 나무꽃보다도
붉은 나무꽃이 더 먼저 피어난다.
흰 구름이 게으르게 흘러 다니며
앞 산에 그림자를 만들 때면
나는 마치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듣는 착각에 빠졌다.
구름 그늘이 걷히며 드러나는
붉은색과 흰색, 그리고 초록의 나무꽃들이
환하게 빛날 때
마치 '환희의 송가(Ode to Joy)'가 들리는 것 같았다.
빛들이 만들어 내는 교향곡을 들으며
다시 삶의 기운이 몸속에서
기운차게 솟구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한 사람이 벚꽃 피는 계절에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봄은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은 겨울을 지나면
어김없이 우리 곁으로 찾아온다.
아마도 내년 이맘 때면
다시 이곳을 찾아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며
살아 잇는 사람들끼리 더 사랑하자고
마치 앞 산의 나무들이 그리하는 것처럼
우리도 '환희의 송가'를 목청껏 부르지 않을까.
Catskill의 산에는 붉은 나무꽃이 피어 있어서
마치 가을인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길 가의 무인 판매대.
꿀, 달걀, 채소 장작,
등등.
곳곳에 웅덩이, 혹은 연못이 있다.
어떤 곳에는 팔뚝만 한 비단잉어들이
구름처럼 떠다니기도 한다.
도랑 옆 노란 꽃들.
미나리와 Water Cress는 아직 여린 싹뿐이어서
비빔밥을 해 먹으려던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하룻밤을 여관(?)에서 지내고
다시 Vega House고 가던 길.
안개가 걷히고
구름이 산 허리에 걸려 있었다.
야생 칠면조.
언덕이 끝나는 곳에 Vega House가 있다.
세 길이 만나는 곳에 있어서
나는 삼거리 집이라고 부르고 싶어질 때가 있다.
길 옆의 나무가 멋들어지다.
아직 잎이 돋아나지 않았다.
나무 맨 끝에서부터
이 나무의 봄이 시작된다.
집 뒷 산의 나무에는 아직 봄이 올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Esther 씨가 카푸치노를 준비해 주었다.
아침에 꼭 맞는 음악도 틀어주었다.
새소리, 봄 빛,
어떻게 더 완벽한 아침을 기대할 수 있을까.
집 앞의 목장.
오뉴월 개팔자라는 말이 있다.
사오월의 소팔자도 개팔자에 못지않다.
트레일러로 이루어진 아주 소박한 집.
아주 소박해도 이곳에서 느끼는 삶의 기쁨은
결코 소박하지 않다.
붉은빛의 나무꽃.
이 꽃들이 떨어진 자리를 초록 잎들이 채운다.
이곳에는 이제 막 봄이 시작되었다는 말과 같다.
숯 속의 상아색 꽃이 궁금해서 가까이 가 보았더니 버들강아지
차를 만날 일이 별로 없어서
당당하게 찻길 한가운데로 걸어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