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세탁소에 나타난 것은 수요일 오전 10시쯤이었다.
내가 'A'라고 그를 칭하는 것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를 정도로 그와의 관계가
그다지 친밀스럽지 못함을 뜻한다.
더군다나 그의 Last Name이 'A'로 시작하는데
발음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요상해서
그는 내게 그냥 'A'만으로 기억되는 사람이다.
호기심이 많은 내가
어떻게 이름을 발음해야 하는지 물어보지 않은 것은
그만큼 그가 내 기준으로 볼 때 '밥맛'없는 사람들 범주에 들어가기에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A는 차라리 우리 세탁소 손님이 아니면
오히려 좋을 것이다.
그는 키도 크고
생김생김도 빼어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충분히 호감이 가는 정도이다.
게다가 말도 얼마나 조곤조곤 논리적이고
교양미 철철 넘치게 하는지
어느 곳이든 여행 중에 만나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아주 좋은 인상을 가진 사람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았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A와 내가 세탁소에서
손님과 세탁소 주인으로 마
만났다는 사실이다.
대 여섯 차례 그를 상대한 나의 느낌은
A가 참 재수 없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무례하다고 지적질을 하며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손님은 왕이니 그리 대접하라는 식이었다.
시시콜콜 이것저것 따지는 그를 보며
차마 '꺼지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가게 문을 닫는 일이 있더라도
다시 보고 싶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곤 했다.
세탁소 카운터에서 30 년 넘게 보낸 시간은
손님의 옷과 말투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와 역사를 눈앞에 펼쳐 보이게 하는
마법을 부리는데
A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까탈스러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옷을 잘 살피고
깨끗하고 안전하게(?) 세탁을 해서
그에게 인도하는 일 밖엔 없었다.
(그래서 세탁 실력은 드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그래서 그가 세탁소에 나타나면
내 몸의 신경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시를 곧추 세우는
고슴도치처럼 빳빳해진다
A는 다짜고짜 자기 옷을 찾으러 왔는데
티킷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을 하는데
마치 내게 싸움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티킷이 두 장이 있을 거라고 말했는데
하나는 5십 몇 달러이며
다른 하나는 검정 색 실크 셔츠 한 장으로
17 달러라고 했다.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맡겼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데 그가 옷을 맡긴 것은 기억이 나는데
티킷이 두 장이라는 것은 의아했다.
왜냐하면 실크 셔츠 한 장의 세탁비가
비싸 봐야 6 달러이기에
그가 17 달러라고 말한 것부터가 어불성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의 어카운트를 컴퓨터에서 찾아보았다.
그런데 그에게는 오직 오십몇 달러짜리 티킷 하나 밖에는
발견할 수 없었다.
문제의 티키 앞 뒤 쪽, 그리고 그날 들어온
모든 옷의 내역을 살펴보아도,
그의 이름, 그의 실크 셔츠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티킷 하나밖에 없다고 했더니
그는 그럴 리가 없다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내가 자기보다 나이가 많아
기억력이 형편없어서 그렇지 분명 티킷이 두 장이었다고
억지를 부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감정을 억누르며
티킷을 찾아서 가지고 오라고 부탁을 했다.
그는 씩씩 거리며
집에 돌아가서 티킷을 찾아가지고 오겠다며 세탁소를 떠났다.
만약 티킷을 찾으면
내 목을 걸겠냐는 협박을 했는데
그 말이 사라지지 않고 세탁소 안을 계속 떠돌고 있는 것 같았다.
'쥐 잡듯이'라는 표현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것임이 틀림없었다.
화도 나고 억울했지만 꾹 참았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았다.
나 자신도 따지고 보면 '재수 없음'의 범주에 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40 년도 더 지나 만난 한 반 친구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말 붙이고 가까이 가고 싶었다."라고.
그런데 얼마나 쌀쌀맞고
곁을 주지 않는지 친구가 될 수 없었다고 했다.
뭐가 잘났는지 나의 재수 없음 때문에
내 주변에는 친구가 머물 자리가 없었다.
나의 시건방진 태도가 많은 사람들에게
부지불식 간에 아픔과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나이가 환갑을 넘기고 보니
이젠 그런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의 고백성사의 마지막 부분에
죄를 고하고 나서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에 대해서도 통회하오니 사하여 주소서'라고 한다.
살면서 무심코 지나가며 남에게 상처를 준 것이 어디 한 두 번뿐일까?
나는 그날 오후 내내 '알아내지 못한' 나의 잘못을 회개하며 보냈다.
다음날 아침 A가 다시 세탁소에 나타났다.
그리고 티킷을 찾지 못하였다고 했다.
티킷을 찾긴 찾았는데
문제의 실크 한 장의 증거가 되어서 내 목숨을 앗을 수도 있는
티킷을 찾지 못해서인지는 그 외에는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티킷을 찾지 못한 그에게서 풀 죽은 티는 조금도 찾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값비싼 실크 셔츠를
세탁소 안에서 도난당했다고 굳게 믿고 있다는
태도가 분명했다.
나는 컴퓨터에 기록된 그의 어카운트를 보여주었다.
그가 옷을 맡긴 날의 수납 기록도 모두 보여주었다.
그의 티킷은 오직 한 장 밖에 없었음을
컴퓨터는 무심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 모든 증거와 기록에도
그의 믿음은 확고했다.
-비싼 실크 셔츠를 이 세탁소에서 도둑맞았다!!!-
누구도 그의 믿음을 바꿀 수는 없다.
그 자신 밖에는.
나도 그럴 것이다.
내 생각과 행동만이 옳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지 아니한가.
이런 사단을 일으켰으니
A가 우리 세탁소에 다시 나타날 일은 없을 것이다.
손님 하나를 보내고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다시는 그를 보고 긴장하고 마음을 졸일 일은 없을 것이다
A 때문에 모처럼 나는 다시 나를 깊이 들여다 보고 반성할 기회를 얻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서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는
공자님의 말씀대로
A는 나에게 아름다운 가르침을 준
스승으로 남을 것이다.
오늘은 덥고 습한 날들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아! 가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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