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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한국 방문 셋째 날 일기




오늘 아침 내가 눈을 뜬 것은 4 시 반,

그리고 일어난 것은 다섯 시다.

열 두 시를 넘기고 들어와 잠에 들었으니

그래도 네 시간 눈을 붙인 것 같다.

잠이 도망간 상태에서 눈을 감고 있으려니

졸음을 견디는 눈꺼풀 무게에 기죽지 않을 만

감고 있는 눈꺼풀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도 힘이 들었다.


그래서 일어났다.

눈꺼풀 한 곳에 몰렸던 중력이 여러 곳으로 분산되었다.

드디어 눈에 자유가 회복되었다.


일기를 쓰려고 오늘이 며칠인 지 날짜를 짚어 보았는데

물가물하다.

손으로 꼽아보니 토요일인 것 같은데 날짜는 잘 모르겠는 것이다..

가까운 날짜를 기억하지 못 하는 것이 치매 증상 중 하나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나는 치매 초기인 것 같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고등학교 친구들의 독서 모임에 갔다가

내가 이야기를 하는 도중

읽었던 책에 나오는 여인의 이름을 떠올리려 하다

실패했다.

다른 친구들은 다 기억을 하는데

나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도움을 받아 입으로 그 이름을 두 세 번 되 뇌었음에도

이 아침 다시 머리 속에 떠 올리려 하는 

나의 눈물겨운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소설 속 그 여인은 이름은 책 속에 꽁꽁 숨기고

내 현실 안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모든 상황을 컴퓨터에 입력한 뒤

독서 모임에 참가했던 친구들 중

가장 먼저 치매에 걸릴 예상자 이름을 꼽아보라면

아무런 미련이나 주저함 없이

내 이름이 제일 꼭대기에 오를 것 같다.


시차 적용이 안 된 상태에서 잠을 충분히 못 잔 탓으로 돌려보기도 하고

여자 문제에 비교적 초연한 나의 성향을 이유로 꼽아 보기도 하지만

공식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발설한다면

논리 부족으로 비웃음을 받을 것이기에

내 마음 속에 꽁꽁 숨겨야 항 것 같다.


내가 치매에 걸려 봐야

정작 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일이라고 뻔뻔한 위로를 해 보아도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할 수 없는 찝찝한 느낌은

미세 먼지처럼 내 안을 떠 돌고 있는 것이다.


어제 나의 일정은 오로지 교등학교 친구들의 

독서 모임 하나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왕년의 내가 워낙 책을 좋아한 것도 그 이유중 하나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작년 고교 졸업 40 주년을 맞아

기념 문집을 발행했는데 

내 부족함만으로 채워진 글들을 모아

따로 별책 부록으로 엮어준 편집위원들이 이 모임의 주축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번 한국 방문 때

어떤 식으로든 그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

독서 모임을 내 버킷 리스트의 가장 윗자리에 올려 놓은 것이다.


장소는 선릉 근처에 있는

'최인아 책방'이라고 했다.

나는 그 곳을 찾아 가면서 '최인아'라는 이름처럼

아름답고 교양이 배어 있는 여인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연한 설레임을 가슴 한 편에 숨기고 갔다.

'최인아 책방'을 되뇌이며

걸음을 옭기며 간판을 훑으며 전진했다.

그런데  나지막한 경사길의 정상까지 다 올라가도록

그 예쁜 '최인아'라는 이름이 보이질 않는 거였다.

아무리 치매기가 있어도

내 판단은 녹슬지 않았다.

전화를 했더니 너무 많이 갔으니 거꾸로 내려 오라는 대답이 들려 왔다.

하릴없이 방향을 돌렸다.

가던 길에서 몸을 돌려 다시 전철 역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최인아'라는 이름이 예쁜 설레임보다는

꼭 찾아야 하는 어떤 의무감을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최인아 책방은 아주 우아하다는 느낌을 주는 건물 4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1층엔 예쁘게 꾸며 놓은 여자 옷 가게가 있었는데

그 옷 가게의 주인이 혹 최인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거기 옷을 사러 가는 여인들은 모두 예뻐야 할 것 같다는

밖으로 표현하기 부끄러운 생각도 잠시 했다.

(난 사실 비교적 합리적인 편인데도 그렇다)


건물 오른 쪽으로 윗 층으로 오르는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있는 입구가 나 있었는데

어두컴컴해서 미리 힌트를 얻지 않고서는

찾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나는 일부러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문을 여니 넓은 공간이 나타났고

음악 소리가 나를 맞았다.

천장이 아주 높았고 이십 여명의 사람들이

매장을 금붕어처럼 천천히 헤엄치듯 둘러보고 있었다.

아늑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몰려 왔다.

'최인아'라는 여인의 이름에 걸맞는 공간이었다.


매장 오른 쪽으로 계단을 오르면 다락 같은 공간이 있는데

소파며 탁자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거기서 책도 읽고 소곤소곤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준비해 논 것 같았다.

아내 생각이 났다.

책 읽을 있으면 조용하고 넓은 우리집을 놔 두고

꼭 차를 타고 'Barnes and Noble'같은 책방으로 가는 

아내가 여기 오면 참 좋아할 것 같았다.


그 다락 아쪽 공간을 막아

회의실을 만들었는데

바로 그 곳이 우리가 만나는 장소였다.


결론적으로 '최인아'는 만나지 못 했고

최인아의 분위기만 느낄 수 있었다.


나까지 모두 여섯이 모였는데

나는 다섯 번 째로 출석을 했다.

먼저 온 친구들은 주최측(?)이 준비한 김밥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내게도 김밥을 권해서 맛을 보았는데

아주 훌륭했다.

김밥 이름을 외우려 몇 번을 중얼거려 보았다.

이 아침에 재생하려고 하는데

'Error' 싸인이 뜬다.

내 머릿 속 하드 디스크에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다시 난 치매 걱정을 잠시 동안 해야만 했다.


김밥과 후식으로 배꼽 오렌지를 먹었는데

그 맛 또한 훌륭했다.

게다가 커피까지.

유럽 여러 나라를 다니며

그 가격의 50배를 넘게 내고 먹은 어떤 음식보다도

내가 먹은 김밥과 오렌지와 커피는

비교 불가의 맛과 행복감을 선사해 주었다.


이쯤해서 난 '대한민국 만세' 삼창이라도 해야

그 고마움이 표현될 것 같았다.

(마음 속으로 한국은 참 좋은 나라라는 생각을 했다.)


졸업 후 처음 만나는 친구가

내게 자신의 책을 한 권 선물했다.


'성공경영 '삼국지'라는 제목인데

자기가 쓴 아홉 번 짼가 열 번 째 저서라고 했다.

선물 받았으니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먼저였고

고마움이 그 두 번 째였디.


세탁소를 26년 째 하고 있지만

난 경영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내 일 열심히 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충분히는 아니더라도

조금 더 나누어 주는 것이 내가 하는 전부다.

일하는 사람들은 작년에 들어온 한 명을 빼고는 

세명은 10 년이 넘게 나와 일하고 있다.

내가 뭘 잘해서라기 보다

상황이 바뀌는 걸 두려워 하고 원하지 않는

내 보수꼴통 기질 때문이다.


아이들 다 키워 다 제 갈 길 스스로 찾아가고 있으니

나름 인생 성공 경영 한 셈이다.

(자화자찬인데 사실은 아내의 공덕이 대부분이다.)


어제 우리가 읽고 이야기를 나눈 책은 김훈의 '칼의 노래'였다.

사실 난 이 모임을 위해서

아침부터 책을 붙들고 씨름을 해야 했다.

두어 페이지 진도가 나가기도 전에

돋보기에 덮인 내 눈 앞의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미약한 시력과 시차, 그리고 충분하지 못한 잠,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대로 회전하지 못하고

덜그덕거리고 삐걱거리는 나의 두뇌가 합심해서

책장 넘어가는 걸 더디게 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이순신 처럼

식은땀이 나고 먹은 것을 토하며

코피를 쏟을 지경이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이렇게 첫머리를 시작하는 이 책을 펼치며

한 동안 한 장의 책 장도 넘길 수 없었다.


'버려진 섬'


바로 그였다.

그 처연한 심정이 내게 그대로 들어와 박혔다.


우리는 모임을 끝내고 뒷골목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의 뒷골목은 '저녁이 있는 삶'이 펼쳐지는 무대였다.

음식점과 술집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곳에서 '저녁의 삶'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처럼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저녁의 삶'을 집에서 하고 있는데

서울 사람들은 뒷골목에서 흥겨운 '저녁의 삶'을 이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어제는 저녁의 삶을 서을의 뒷골목에서 경험했다. 

소주와  빈대떡, 그리고 또 뭐였더라, 

김치찌개 같은 것에 라면을 넣어 끓인 안주를 소도구 삼아

'저녁이 있는 삶'을 시작했다.

친구들과의 저녁의 삶은 나름 흥겨웠다.


소주를 석 잔인가 넉 잔을 마시고 나니

취기가 온 몸에 전해졌다.

부족한 잠 때문에 눈이 감겨 왔다.

저승사자가 슬그머니 내게 와서

자기랑 함께 가자고 유혹하면

군말 보태지 않고 따라나설 것 같았다.

육신을 지탱해야 하는 내 영혼이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은 구글과 그것이 미치는  

현대와 미래의 삶과 인류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난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더 눈꺼풀이 무거웠는 지도 모를 일이었다.

단지 아내 말대로

사진 찍을 때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 때 

지문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 밖에 할 말이 없었다.

구글이 지문을 인식한대나 뭐래나,

허버트 조지 웰즈의 소설처럼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세상이 멀지 않은 것 같아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진 찍으면서 카메라에 손톱이 보이게 'V'자를 하든가

아니면 장갑을 끼고 'V'를 만드는 풍경이 머지 않아 등장할 것이다.


남자들 여섯이 모여 술을 마시면서

여자 이야기를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내어 놓지 않았다.

첫사랑 생각이 가끔 난다는 정도로 살짝 스쳤지

19금은 커녕 'General Audience'  등급의 이야기가 오갔는데

만약 tv로 방영된다면

시철률이 소숫점 한참 밑으로 떨어질 것 같은 수준이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모두 같은 전철을 탔다.

어떤 친구는 중간에 내렸다. 

한 친구와는 3 번 전철로 함께 옮겨 탔다.

그리고 그 친구는 약수역(또 생각이 나지 않는다.)에서 내렸고

나는 호텔에서 가까운 종로 3가에서 내렸다.


사람과의 관계도그런 것 같다.

누군가와 얼마 동안이든 같은 공간과 시간을 함께 나누어 갖는데

그걸 인연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 인연이라는 것이 우리 유전자 속에 숨어 있다가

긴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났을 때

각자의 유전자 속에 숨어 있던 인연들끼리 서로 환호하며 얼싸 안는 것.


긴 시간이 흘러도 

맞잡은 손으로 '우리'를 만드는 일,

그것이 사랑이고 우정이 아닐까?


--전철 안에서-

머리 허연 '흰 머리 소년 셋'이 경로 우대석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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