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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오늘 일기 (2월 16일)














어제 잠자리에 든 것이 오후 9시 반 쯤이었다.

한 동안 열심히 잔다고 잔 것이 고작 두어 시간,

눈을 뜨니 시계는 밤 11 시 45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시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아도

한 번 떠난 잠을 내 속에 잡아 두기가 힘이 들었다.

식사 시간이며 화장실 가는 시간마저

뉴욕의 그것에 고정되어 도대체 적응이 되질 않는다.


그래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뜬금 없이 배가 고파왔다.

밤 열 두시가 넘어 잠을 이루지 못 하고

아내가 사다 놓은 단팥빵을 우적이고 있는

한 밤의 내 자화상.

몸부터 마음까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가 이렇게 힘들어지는 걸 보니

나야말로 보수 꼴통이다.


눈물겨운 노력 끝에 간신히 잠이 들었다가'다시 눈을 뜬 것은

오전 일곱 시가 다 되어서였다.

서둘러야 했다.

호텔도 옮겨야 하고

아침 열 시에 가기로 한 치과에도 늦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어제 하룻밤을 머문 호텔에서는

아침 식사를 제공했다.

볶음밥과 미역국, 그리고 만두 같은 한식 메뉴가

달걀과 해시 브라운, 소시지 같은 국제적인 아침 메뉴와 함께 있었다.

우리 보다 먼저 식당에 와 있던 어느 서양 남자가

미역국을 가리키며 도대체  무어냐고 물었다.

'먹을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갈등 했음을 알 수 있었다.

'Seaweed soup'이라고 알려 주었다.

미역이 몸 안의 피를 만들고 맑게 해 준다고 말 해 주었더니

그 남자는 미역국 한 그릇 시식을 했다.


고래도 출산을 한 후 미역을 먹는다는 사실을 아내가 일러 주었다.

더군다나 우리 마님이 미역국을 좋아하기에

아침 식사 메뉴에서 미역국을 만난 사실은 거의 심을 본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정작 나는 먹지 않았다.


아마 그 독일인은 하루 종일 왠지 기분이 상쾌하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피가 되는 미역국을 먹었으니 말이다.

하루 종일 몸이 개운하게 느꼈다면

'그 남자는 아마 그것이 미역국 탓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어느 대학에서 한국인 학생들에게 독일어를 가르치는 그 남자는

강의 시간 중 미역국에 대한 토픽을 독일어로 써 오라고

학생들에게 과제로 내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미역국이라는 음식 하나에 담긴

한국인의 문화와 정서를 학생들로부터 더 많이 듣고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 독일 남자가 독일로 돌아간 뒤

어느 한국인을 만나서

미역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그 한국인은

이미 반 쯤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을 열 것이다.

그리고 쉽사리 친구가 될 것이다.


나도 그런 경험을 참 많이 한다.

파란 눈의 청년이나 아가씨가 

내가 일하고 있는 세탁소에 와서 

"김치 어디서 살 수 있어요?" 묻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럴 때 내 마음은 스르르 풀려서

내 혼자 먹을 김치 밖에 없어도 다 싸 줄 것 같다.

음식 한 가지 만으로도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데

상대방의 언어나 음식을 이렇게 작은 부분이라도 공유하는 것이

낯 선 사람들끼리의 소통의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아침을 먹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치과 약속 때문이었다.

어금니 서너 개가 금이 가고 부러져서

치료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뉴욕의 치과에서는 최소한 여섯 번 넘게 

많으면 열 번 동안 방문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그런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서

한국에 올 기회를 이용해서 치료를 받기로 한 것이다.

가령 30 분 짜리 수업 열 번을 받아야 하는 것을

두 시간 씩 두 번 수업으로 끝내는 식이다.


두어 시간 꼼짝 없이 치료를 받았다.

윙윙 거리는 모터 소리가 치료 후에도 들리는 것 같았다.

이를 포함한 신체의 모든 부분도 노쇠해져 간다.

젊은 시절 튼튼한 이를 과시하려

호두 같은 견과류도

다른 도구를 쓰지 않고 오로지 내 이로 껍질을 깼다.

병 뚜껑도 이로 열었다.

이제야 안다.

이 뿐 아니라 몸을  쓸 때도 겸손해야 함을.

그렇게 몸 뿐 아니라 마음도

겸손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써야 함을

환갑이 다 된 이제서야 깨닫다니-------


겸손이라는 것은 마음 을 쓸 때 뿐 아니라

몸을 쓸 때도 해당된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 같다.

마음은 알며서도 그 씀씀이가 가벼웠고

몸은 몰라서 씀씀이가 헤펐다.


이제 몸 여기저기서 이상 신호를 보내니

정신이 번쩍 난다.

몸도 마음도 겸손해져야 할 나이가 환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어머니를 찾아 뵐 순서.


경기도 안성에 있는 미리내 성지 근처에 있는

유무상통 마을이라는 곳으로 거처를 옮기신 것이

지난 해 11월 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작년 여름부터 뇌경색 증상등으로

여러가지로 어려운 상황을 많이 겪으신 결과

집을 정리하시고

그곳에 머무시기로 마음을 정하셨단다.


병원을 옮겨다니는 일부터

집을 팔고 정리하는 일까지

외종사촌 동생 부부가 다 했다.


만약 입장을 바꾸어서

우리부부가 외숙모가 그런 상황일 때

그렇게 헌신을 할 수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대가를 바라지 안는 헌신.


특히 동생 부인의 헌신은 그녀와 얼굴을 마주치는 것을

부끄러워 하게 만들 정도였다.

볼 낯이 없었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LA에사는 여동생이 지난 3일에 

그곳에 가서 어머니와 함께 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시외버스를 타고 안성까지 가서

어머니 계신 곳까지 택시를 탔다.

신호등이 거의 없는 시골길을 택시로 20여분 가야 하는 곳에

우리의 목적지가 있었다.


이 치료 때문에 했던 마취가 풀릴 때까지

점심 식사를 미루다 보니

점심 때를 놓쳤다.

어머니 계신 곳 근처엔 마땅히 끼니를 해결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택시 기사의 말에

목적지까지의 거리를 제법 남긴 곳에 있는

'토속음식점'이라는 간판을 보고 그 곳에 내려 달라고 했다.


한적하기 그지 없는 그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니

두 사람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그리고 우리 둘이 손님의 전부였다.


우리는 (작은)새우 매운탕을 주문해서 먹었다.

반찬으로 나온 취나물과 도라지 무침,

동치미와 김치에 할라뻬뇨도 있었다.

멕시코 사람들이 즐기는 할라뻬뇨를

한국에서 그것도 아직 논밭이 있는 시골에서 만난 것은 뜻 밖이었다.


새우 매운탕의 얼큰하고 담백한 맛도 맛이거니와'

나를 감동케 한 것은 

음식을 담은 그릇이 전부 안성 유기였다는 점이었다.

누가 지금 세상에 유기를 쓰고 있을까?

유기는 모두 반짝반짝 윤이 났다.

어릴 적 양잿물과 짚으로

유기를 닦던 아낙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 올랐다.

쉬 녹이 나서 관리하기 어려운 

그 유기에 담긴 음식맛은 둘째 치더라도

그렇게 정성들여 닦은 그릇으로

손님을 맞는 그 분들의 마음을 맛 볼 수 있음은

현대 생활에서 만나기 힘든 축복이었다.


아직 그 곳은 디지탈이 아닌

아날로그가 생생하고 살갑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음식 맛 또한 유기 때문에 받은 감동 못지 않았다.

이젠 자식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우리 어머니 대신

멀리 외지에 갔다가 오랜 만에 돌아온 자식을 먹이는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한 정성이 느껴졌다.


여러 나라의 숱한 음식을 먹어 보았어도

이리 감동스런 맛을 가진 음식을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은 법이다.

예쁘게 치장하지 않아도

감동이 있는 밥상,

그래서 먹고 난 후에 행복한 포만감에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그런 소울 푸드가 있는 밥상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식사 후에 식당을 떠나며

정말 잘 먹었다는 인사를 하니

우리 전에 들렸던 단체 손님 때문에

감자조림이 떨어져 

상에 올리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 말에 감자 조림을 먹지 못 해서 더 행복해진 마음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느낄 수 있을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대답을 들으며

요즘 한국 사회를 들끓게 만들고 있는 사람들의 

굳게 닫힌 입들을 생각했다.


소통이란 그런 것이다.

손님 상에 올리지 못 한 음식을 굳이 밝히는 일,

그리고 그 말을 듣고 행복해 하는 일.


이 곳이 성지 근처여서 그랬을까?

식당 안을 둘러 보니 식당을 하는 분들도

나와 같은 종교를 가진 분들이었다.


그 분 들은 말 없는 전교를 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학이나 성경 말씀은 몰라도

삶의 태도로 이웃에게 사랑과 정성을 실천하는

'말 없는 신자'

유명한 신학자나 설교가보다

그런 분들 앞에서 고개가 숙여진다.


우리는 호수를 끼고 난 길을 따라 걸었다.

겨울의 시골길을 우리처럼 걷는 사람은

하루 종일 아무도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길 가에 난 집에서 가끔씩 낯 선 우리들을

향해 짖어대는 개들 소리 밖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루 종일 심심하던 개들에게 우린 일거리를 준 셈이 되었다.

그리고 고인 물이 얼어서 생긴 얼음 위로

베어낸 볏집단의 아랫 부분이 삐죽이 드러난 논 위에서 

까마귀 몇이 때론 혼자,때론 같이 우짖는 소리가 

우리가 만난 전부였다.


어머니가 계신다는 곳은

언덕 위에 아주 웅장한 자태로 서 있었다.

게다가 건물 자체에도 여러 가지 색으로 페인트 칠을 해서

눈으로 보기에는 화려했다.


거기다가 곳곳에 돌로 상을 세우고

글귀를 새겨 놓았는데

나는 그런 것들이 마음에 걸렸다.


'유무상통 마을'


삶과 죽음이 하나

공즉시색

색즉시공


순간과 영원


내게 주어진 화두였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어머니는 그 곳에 계시지 않았다.

외출을 하셨다는 거였다.


데레사(외종사촌 동생 댁)씨가 와서

동생과 어머니를 모시고 외출을 했다는 거였다.

어머니는 오랜 만에 미장원에도 들르시고'

쇼핑과 외식을 하러 멀리 분당까지 나가신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발길을 돌려

분당까지 가서 결국 어머니를 뵐 수 있었다.

예전처럼 걷지도 못 하시고

말도 선도가 떨어지기는 했어도

의사표현이 제대로 되는 것으로 보아

생각보다 상황이 많이 나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와 접선을 한 곳은 전에도 한 번 갔던 식당이었다.

어머니 일행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흔히 육수 불고기라는 걸 먹었는데

먹다 남겼다.

너무 달았다.

음식에 마음이 담겨져 있지 않았음이 느껴졌다.

먹어서 행복해지기는 커녕

몸에 해가 되는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미료와 설탕을 듬뿍 써서 혀에만 감기는 찰나적인 맛.

2년 전 속초에 가서 먹었던 속초 순두부 맛이 생각났다.


난 어떨까?

조미료와 설탕으로 적당히 얼버무려진 

그런 사람이 아닐까?

말난 화려하게 하며

남의 혀만 자극하는,

감동과 사랑이 빠진 그런 육수불고기 같은 그런 사람.


어머니를 뵙고

발길을 돌려 호텔로 돌아왔다.


'유무상통'


삶은 여정이다.


그 여정 끝에 만나야 할 사람이 없어도

그 여정은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여정을 떠나 본 사람만이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는 경지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파랑새는 곁에 있어도

여정을 마치고 도라와서야 비로소 그 파랑새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우리의 삶의 여정은 

무의미한 것 같아도 

일단 떠나야 하고'

떠났으면 멈춰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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