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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어제 (2월 15일) 일기


뉴욕의 JFK 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어제 아침 5 시 쯤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뉴욕 시간으로 새벽 0시 50 분 출발.

비행기 밖으로 빛을 거의 볼 수 없이

밤의 연속이었다


밤으로의 긴여로'


열 네 시간에서 10-20분이 빠지는 시간 동안 

어둠 속을 날아 온 것이다.


그 긴 시간을 날아 이 땅을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공항 버스를 타고 호텔이 있는 종로 3 가까지 와서

호텔을 찾아 가 짐을 맡기고

아침 식사를 했다.

마침 날이 쌀쌀해서

호텔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난 설렁탕을 주문해서 먹었다.


빈 속이 훈훈해졌다.


식사 후엔 근처에 있는 커피 집에 가서

늘 그러하듯 식사 후 커피를 마셨다.

커피집 건너 편에 중국집이 보였다.

짜장면 4000원,

홍합 뽕 6000 원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지는 경우다.


싼 값에 그것도 주변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먹을 수 있다니----


wi-fi가 있는 커피집에 앉아 소위 쎌카를 찍어

내 페이스 북에 올렸다.

고교 동창에게서 환영한다는 답글이 올라왔다.

(참 별거별거 다 한다. - 평소에 시덥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내가 하다니)


전철을 타고 동작동 국립 현충원에 갔다.

한국에 오면 제일 먼저 공식적인 행사가

돌아가신 아버지께 신고식을 하는 일이니

우선 순위를 두고 아버지께 다녀왔다.


살아 계실 때 더 자주 찾아 뵙고

더 잘 해드렸어야 했는데

다 부질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아니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 켠이 작은 위로로 채워졌다.

아버지가 아닌 나를 위한 일이었다.


현충원에 간 김에

내가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1980년에 순직한 

소대원의 묘소도 찾아 보려 했는데

찾을 수가 없어서 포기했다.


키도 훤칠하고 잘 생겼었는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식을 올리지 않고 같이 살던 여인과의 사이에

아이도 하나 있었는데

소대원의 부모님과 함께 아이를 들쳐 업고 온

그녀의 울부짖음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 올랐다.

그가 죽었을 리 없다고 몸부림치던 그녀도 

이젠 50대 중반을 넘어섰을 것이다.

그리고 아들도 30대 중반을 넘어 불혹의 나이 가까이 되었을 것이다.


그 숱한 죽음들 마다

다 사연이 있고 아픔이 있었을 것이다.

그 슬픔과 고통의 합은 얼마나 크고 무거울 것인가.


걸어 올라 왔던 길의 반대편으로

걸어 내려 왔다.

까치가 울음을 울었다.

우리가 반가운 손님일 그 누군가가 거기에 묻혀 있는 것일까?

내 아버지가 까치의 울음을 빌어

내 방문에 응답을 하신 것일까?


비행기 안에서 늘 그러하듯

시바스 리걸 18 년 된 위스키 한 병을 사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를 기억하며 누군가와 나누어 마실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 또한 애게 건네는 작은 위로가 될 것이다.


호텔에 돌아왔는데 아직 방이 준비가 안 되었다고 해서

아내와 근처의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정말 '시간 죽이기'의 한 예가 될 것이다.

우리보다 10 살은 더 되어 보이는 (노인)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시간이 맞는 것이 '더 킹'

중간중간 졸면서 보았다.

내 머리의 무게가 엄청 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깨달았다.


호텔로 돌아 와

잠시 침대에 누웠다.

하루가 넘는 시간 제대로 눈 한 번 붙히지 못해서 인지

눈이 무겁고 텁텁했다.

누울 수만 있어도 축복이라는 생각이 밀려 왔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잠이 들 수 있음도,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영원히 눈을 감을 수 있음이 

축복일 수 있다는 생각을 아주 잠깐 동안 했다.


한 시간 정도 누워 있다가 일어나 샤워를 했다.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전화를 했다.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그러자고 했다.


서점에 있다는 친구의 말에

책 한 권을 부탁했다.

김훈의 '칼의 노래'

십 년도 넘어 아주 오래 전에 한 번 읽은 책이다.

전화를 했던 친구가 주축이 되어 

고등학교 동창들끼리 독서 모임을 만들었는데

2월에 만나 이야기를 나눌 책 제목이다.

집에 있던 책을 찾지 못 해서 아마존에 주문을 했는데

일 주일도 넘는 시간이 지나도 그 책은 내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그 책은 내게 배달될 것이다.

때를 놓치는 일.

그러나 때를 놓쳤기에 

나는 친구에게서 책 한 권을 선물 받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나는 그 친구가 기쁜 마음으로 그 책을 사 들고 왔음을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 책에 대한 기억을 떠 올릴 때마다

친구의 마음도 함께 기억될 것이다.


친구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아내는 할 일이 있다며 먼저 호텔 방을 나서며

'자기 걱정은 말라며 친구와 저녁 식사를 하라고 했다.


얼마 후 방으로 전화가 왔다.

아내와 친구가 로비에서 만난 것이었다.


아내의 할 일이란 것이 자기 친구의 도장을 새기는 일이었는데

그 지역을 손금 들여다 보듯 알고 있는 

친구의 길 안내를 받아 쉽사리 해결할 수 있었다.


인사동 에 있는 '지리산'이라는 한식집에서 식사를 하며

그 짐에서 담근 막걸리를 곁들였다.

달짝지근한 막걸리름 마시며

우리의 이야기도 붉게 물이 들어갔다.


문화 예술 관계의 일을 한 친구 덕에

짧은 시간 동안 필요한 정보와 이야기를 풍성하게 들을 수 있었다.


저녁 식사 후에

아내는 먼저 자리를 비키고

친구와 둘이 옆 골목의 조용한 찻집으로 가서

2차를 했다.


나야 차무식이어서

감히 차의 맛을 말할 자격이 없지만

시간이 주는 구속에서 벗어나

한가롭고 그윽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참으로 자유인이 된 것 같은 행복을 맛 볼 수 있었다.

차의 맛도 결국 마음이 자유로와야

그윽하게 우러나는 것임을-----


우리는 금요일에 독서 모임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아침 여섯 시에 보았던 거리의 모습을

밤에 보니 영 딴 판이었다.

민 낯과 진한 화장을 한 여인의 얼굴 차이 정도가 아니었다.


이렇게 하루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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