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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걱정 말아요,그대




"'걱정 말아요, 그대' 한 열장 복사해 주세요"


마님께 문자가 왔다.


나는 자신 있게

"걱정 말아요, 그대"라고

문자를 보내려다 보류하기로 했다.

문자는 임무를 마친 다음에 보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마님이 부탁한 문제의 CD는

지난 주 집에 들어가면서 듣고 또 들어야만 했

바로 그 CD였다.

(마님이 좋아하면 나는 당연히 좋아해야만 한다.)

여러 가수들이 각기

'걱정 말아요, 그대'라는 제목의 노래를 

자기만의 개성과 감성으로 부른 것을

모아 놓은 것이었다.

(전인권, 이적,알리,김필과 곽진언 듀엣, 등등---)


혼자 부르라면 모르지만

띄엄띄엄 가사와 멜로디를 따라 할 줄 알 정도로

나는 이미 그 노래와 친분을 튼 상태였다.


그 CD는 지난 9월 마님이 한국에 다녀 오면서

초등학교 (남자) 친구가 선물한 것을 들고 온 것으로

지금까지 미루고 있다가

드디어 지난 주에서야 처음으로 들어본 것이다.

그런데 이 노래를 듣고 너무 깊은 감동을 한 

박애주의자 마님이

이웃에게 널리 전파해야 할 사명감 같은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고

결국 CD 복사 작업을 내게 부탁(=지시)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홍익인간


인간을 널리 이롭게한다는, 

고조선부터 내려 오는

대한민국 교육 이념에 따라

초,중,고, 그리고 대학까지 한국에서 마친 우리 부부는

미국으로 이민 온 지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그 정신을 간직하고 있다.


나야 미미하지만 

마님은 그 홍익인간 정신이 얼마나 투철한 지

어제도 집에서 내 음향기기와 소파를 

부르클린 아파트로 옮겨 오는데

이사 비용 외로

일 하는 것을 보니 고생이 심하다고 하며

이사집 직원 세 명에게 

각각 50 달러 씩 팁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니 주변 이웃들을 위한

마님의 마음 씀씀이가 대충 보이지 않는가?

(내가 이사집 직원을 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발설은 하지 않았다.)


CD를 복사하는 것은 

3-4 년 전만 하더라도 내게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런데 내 차의 음악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서

CD 복사하는 일을 중단하게 되었다.

500 장이 넘는 음악 CD  중 내가 아끼는 음악은

만약을 대비해서 복사를 해서 원본은 집에 보관하고

복사본은 차에두고  이동할 때 들었다.

그러니 CD 복사는 내게 불을 켜기 위해

스위치를 올리는 일처럼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러니 CD 복사하는 일을 멈춘 지가 3-4 년이 되었다는 말이다.


'Mission Impossible'도 아닌데다가

마님의 홍익인간 정신 구현에 한 몫 한다는 기쁜 마음으로

지시사항 이행에 한 치의 차질이 없도록 모든 준비를 끝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CD에 들어 있는 음악을

컴퓨터에 다운로드 하는 데까지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 되었다.

흔히 '굽는다'는 말로 표현되는 'Burn'을

아무리 클릭해도 콤퓨터는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묵묵부답일 뿐이었다.

(지난 3년 동안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도대체 뭐가 문제지?-


내 머리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컴퓨터 이상이 아니라면

내 기억력에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평소에 깜빡깜빡 하는데

벌써 치매가 많이 진전된 상태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었다.

'걱정 말아요, 그대'라는 노래를 복사하기 위해

보통 걱정거리가 생긴 게 아니었다.


마님에게 '걱정 말아요, 그대'가 아니라

'걱정거리 생겼어, 그대'라고'

문자를 보내야 할 판이었다.


마님의 부탁은 결국 어제는 끝낼 수가 없었다.

CD 복사가 그야말로 'Mission Impossible'이 되는

웃어넘기지 못할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초조하고 서글픈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 아침 다시 마님은 내게 'Mission'에 대해

언급을 했다.

"이번 주말까지 다 마쳐야 해요."


"에-----^^


-어쩌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라도 해야지-


오늘 아침 다시 컴퓨터를 켜 보니 어제 저장했던 음악은 그대로 있었다.

또다시 어제처럼 'Burn'을 클릭해도

묵묵부답으로 콤퓨터는 여전히 나를 무시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Burn' 왼 쪽에 'Play'가 있고

바로 그 아래 'Start Burn'이라는 표시가 있는 게 아닌가?


"옳거니!"


바로 그거였다.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이.


조심스레 우주의 기운을 모아 'Start Burn'을 클릭했다.

잠시 후에 '2% completed'라는 표시가 보이더니 

숫자는 점점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 째 CD가 완성되어

'뻥이요'하고 강냉이 터지듯

경이롭게 컴퓨터 밖으로 삐져 나왔다.


홍익인간이고 뭐고

얼마간 깊어진 치매의 늪에서

나를 건져낸 기쁨 때문에 얼마나 기뻤는지-----


이제 드디어 마님께 자랑스럽게  문자를 보낼 차례다.


"Mission Completed, 걱정 말아요, 그대"


아, 그리고 내 자신에게도

'걱정 말아요, 그대'라고 문자를 보내는 걸 잊지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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